중국 보따리상 감소·여행트렌드 변화 탓…”내국인·동남아 공략”
코로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여행 수요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한국내 면세 업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기간 4분의 1토막이 난 면세점 방문객 수는 절반 가까이 회복됐으나 매출은 코로나 때보다 못한 상황이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면세점 업계는 중국인 보따리상에 대한 수수료 인하로 거래가 줄어든 데다 여행 트렌드가 이른바 ‘핫플레이스’ 중심의 개별 관광으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고꾸라진 면세 매출…작년 매출, 코로나 때보다 못해
14일 한국면세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면세점 매출은 12조4천512억원으로 집계됐다.
12월 매출 예상분까지 고려하더라도 작년 한 해 매출액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 수요가 완전히 끊겼던 2020년 수준에 못 미친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2009년 3조8천억원에서 계속 증가해 2016년 10조원을 돌파했고,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24조8천586억원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2020년 15조원대로 급감했고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7조8천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본격적인 ‘엔데믹'(endemic·풍토병화한 감염병)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회복 추세로 접어들었는데도 면세점 매출은 오히려 코로나 기간보다 못한 셈이다.
업계는 실적 부진의 원인을 보따리상 감소와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입 지연에서 찾고 있다.
국내 면세점들은 코로나 기간 기형적으로 증가한 중국인 보따리상에 대한 송객수수료를 정상화하기 위해 지난해 1분기부터 이들에게 지급하는 수수료율을 낮췄다.
면세점을 찾는 보따리상이 줄면서 외국인 1인당 면세 소비 금액도 감소했다.
외국인 1인당 면세 소비 금액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00만원선에서 보따리상 구매에 힘입어 코로나 기간인 2021년(2천555만원), 2022년(1천만원) 증가했다가 지난해 11월 기준 143만원선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이 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한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중국 내 경기 부진으로 구매력이 줄어든 데다 여행 트렌드가 단체관광에서 개별 관광 중심으로 바뀐 탓이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가 주를 이룬 개별 관광객은 이전처럼 면세점에서 물건을 쓸어 담기보다 사회관계망(SNS)에서 유명한 핫플레이스를 둘러보고 내국인들이 찾는 로드 매장에서 소소한 쇼핑을 즐겼다.
◇ 면세점들, 전략 수정 나서…’내국인·동남아 공략’
이런 추세에 따라 국내 면세점들도 전략 수정에 나섰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입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수 있겠지만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내국인과 동남아시아 관광객 수요를 공략하는 데 힘을 주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충성고객 확보를 위해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고 개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팝업에도 신경 쓰고 있다.
명동에 쇼룸 ‘엘디에프 하우스'(LDF HOUSE)를 마련하고 MZ세대를 겨냥한 다양한 캐릭터 팝업을 선보이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점과 호주 브리즈번공항점에 주류전문관을 조성하는 등 해외점도 강화하고 있다.
6개국에서 14개 매장을 운영하는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1∼3분기 기준 해외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3% 증가했다.
2019년 6% 수준이던 해외점 매출 비중도 지난해 상반기 15%까지 올라섰다.
신라면세점은 유료 멤버십을 내놓고 인천공항점 등에 체험형 팝업을 강화하고 있다.
온라인 주류플랫폼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스마트 오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라인페이 대만 등과도 제휴를 맺었다.
신세계면세점은 K패션 브랜드를 확대하고 홍콩 최대 항공사 캐세이퍼시픽항공 등을 운영하는 캐세이그룹과도 손잡았다.
롯데와 신라, 신세계, 현대 등 4개 업체는 오는 15일 마감되는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면세점 주류·담배 부문 신규 사업자 선정 입찰에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 면세기업 목표주가 하향 조정…증권가 “2분기 이후 개선 가능성”
증권사들은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면세점들의 목표주가를 잇달아 낮췄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면세 업황 개선 속도가 느린 점을 고려해 호텔신라[008770] 목표주가를 9만원으로 기존보다 4% 낮췄다.
한국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도 호텔신라 목표주가를 각각 9만원과 8만2천원으로 기존보다 각각 10%, 7% 낮췄다.
서현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부문 회복에도 면세점 사업이 적자폭이 커져 수익성 저하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실적 추정치와 목표주가를 낮췄다.
그는 신세계의 실적 추정치와 목표주가도 하향 조정하면서 “백화점과 면세점 업황 개선을 기대하며 긴 호흡에서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면세업계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을 진행하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단체관광객도 나들이 수요가 늘어나는 2분기 전후로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특허수수료 감면 연장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긍정적 신호로 꼽힌다.
정부는 앞서 코로나 기간인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면세점 특허수수료를 50% 낮춰줬고, 이후에도 업황이 부진한 점을 고려해 지난해 매출분에 대해서도 수수료를 깎아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는 또 보따리상에 대한 수수료 정상화 노력이 당장 매출 감소로 이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다음 달 중국 춘제(春節·설) 연휴가 있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은 특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달라진 여행 트렌드에 맞춰 체질 개선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