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청소년도 당당한 사회 구성원…”정부가 정신건강 통합 지원책 마련해야”
한국 사회에서 이제 다문화 청소년은 전혀 낯설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집계한 ‘202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다문화 초중고생은 총 16만8천명으로 전체 학생의 3% 이상에 달한다.
2013년만 해도 청소년 100명 중 1명꼴(0.9%)에 머물렀던 다문화 비중이 10년 만에 100명 중 3명 이상으로 3배 넘게 늘어난 셈이다.
결혼이민자,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난 게 국내 다문화 학생의 증가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 다문화 청소년의 정신 건강은 일반 청소년에 비춰 매우 위태롭다는 분석이 나왔다.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박명배 교수 연구팀이 프랑스 소아청소년과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Archives de Pediatrie) 11월호에 발표한 논문은 이를 다뤘다.
2011∼2020년 한국 청소년 위험행동 웹 기반 설문조사(KYRBS)에 참여한 58만6천829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다문화 청소년의 자살 위험은 같은 또래의 일반 학생보다 최고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다문화 학생은 총 7천349명이었다.
연구팀은 이들 학생을 어머니만 이주민인 그룹(5천692명, 77.5%), 아버지만 이주민인 그룹(587명, 8.1%), 부모가 모두 이주민인 그룹(1천61명, 14.4%)으로 나눠 다문화 가정이 아닌 학생과 자살 위험을 비교했다.
이 결과 다문화 청소년 100명 중 6명이 최근 1년 이내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부모가 모두 이주민인 다문화 학생의 경우 자살 시도 비율이 100명 중 15명이나 됐다. 아빠나 엄마만 이주민인 다문화 학생 그룹에서는 이런 비율이 각각 100명 중 7명, 4명이었다.
일반 청소년의 자살 시도 경험이 100명 중 3명인 점에 비춰볼 때 다문화 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위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연구팀은 부모 모두가 이주민이거나 아빠만 이주민인 경우 다문화 청소년의 자살 시도 위험이 일반 청소년에 견줘 각각 4.6배, 2.1배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다문화 청소년 그룹에서는 지난 1년간 극심한 절망과 슬픔을 겪은 비율도 높았다.
부모 모두 또는 아빠만 이주민인 그룹에서 이런 비율은 각각 100명 중 35명, 37명으로 일반 청소년의 27명보다 높았다. 반면 엄마만 이주민인 그룹에서는 우울감 비율이 100명 중 26명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연구팀은 경제적인 요인, 이주에 대한 스트레스, 소수자라는 위치, 이중 문화의 혼란, 외국인 부모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친구와의 갈등 등이 다문화 청소년에게 우울감을 만들고,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더해 언어능력 부족, 학업성적 부진, 차별 등이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박명배 교수는 “청소년건강행태 조사의 문항은 지난 12개월 동안의 자살 생각, 계획, 시도에 대해서만 묻고 있기 때문에 실제 자살 관련 경험률은 훨씬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우리나라도 이제 명실상부한 다문화, 다인종 국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실질적 참여를 제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 내년도 다문화 아동청소년 관련 정부 예산이 증액되고, 교육활동비가 신규로 지원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다문화 자녀들에 대한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청소년기 자체가 정신 건강에 있어 취약한 시기이고,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만큼 우리 사회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다문화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 특히 우울과 자살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다문화 청소년 중 초등학생에서 다문화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은 앞으로 다문화 학생이 더욱 증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다문화 청소년에 대한 교육, 가정불화와 경제문제, 또래 집단 및 사회인식 개선 등에 통합적인 지원을 확대하는 등 최대한 빨리 국가가 나서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