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허용된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료계는 이견에 재외국민은

비대면 진료

복지부, 6월까지 법 개정 완료 계획…재진환자 중심 추진
간호법 반발 등에 의정협의체 논의 중단…경착륙 우려도

국내외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조만간 코로나19 국제적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해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한국의 비대면 진료 운명에 관심이 쏠린다.

또한 재외국민의 비대면 진료도 걱정이다.

한국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법 개정을 올해 6월까지 완료해 팬데믹 종료와 함께 비대면 진료를 연착륙시키겠다는 목표다.

보건복지부는 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표한 ‘바이오헬스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에서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환자에 대한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해 해외 환자 유치에도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다만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한 의료계 내부의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이를 조정할 의정협의체가 멈춰서면서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 10년 넘은 난제, 코로나19 특수상황 속 한시 허용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해 문진하고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 등을 이용해 진료 상담, 처방하는 형태의 원격의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문제는 의료계에서는 10년 넘게 묵은 난제다.

2000년부터 여러 정부가 여러 차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본사업은 시행되지 못했다. 원격진료 도입 추진은 2020년 의료계 파업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특히 각 지역에 자리 잡은 병원들이 원격 진료로 인해 서로의 터전을 위협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컸다. 또 당시 원격의료의 주 사용자로 여겨진 고령층이 IT 기술이 접목된 원격의료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부는 2020년 말 감염병예방법 개정을 통해 ‘심각 이상의 위기 경보’ 단계 등 재난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감염병 위기라는 특수성이 있는 데다 ‘한시적’이라는 조건이 달리면서 의료계도 대체로 이 방안에 수긍했다.

그 결과 여러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앱이 성행하는 등 비대면 진료는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안착한 모습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이 한층 안정되면서 일상회복 기조에 따라 곧 WHO의 비상사태 해제, 이에 따른 국내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 하향이 이뤄질 경우 한시허용됐던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제1차 의료현안협의체
제1차 의료현안협의체 (서울=연합뉴스)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제1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이 발언하고 있다. 2023.1.30 

◇ 갈길 바쁜데 의정협의는 중단…이견 속속 표출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 조정 전에 규제개선 측면에서라도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고 연착륙시키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범위에 대한 의료계 내부 이견이 남아있는 데다 간호법 제정 등의 이슈로 복지부와 의료계 간 협의체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정부와 의료계의 협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월 논의를 시작한 의료현안협의체는 두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간호법 제정 움직임에 반발하는 의사단체의 불참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그러는 사이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의료계 이견은 더욱 벌어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과거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할 때마다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했던 점을 고려해 이번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에도 ‘재진 환자 중심’ ‘의원급 의료기관 위주’라는 조건을 걸었다.

대면 진료를 받은 내역이 있는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받도록 함으로써 동네병원들의 지역 내 영업권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의사회·서울시약사회·서울시내과의사회는 지난달 21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비대면 진료 및 약 배달 제도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이 허용될 경우 1차 의료기관과 약국은 고사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다.

약 배달 서비스를 막을지, 유지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약사단체들은 비대면 진료는 허용하더라도 의약품 택배 배송을 전면 허용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할 때 약 배달 문제는 장애인 등 거동이 어려운 분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등 비대면 진료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약사회 등 관련 단체와 충분하게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번 방안에 비대면 진료를 도서·벽지·재외국민·감염병 환자 등 의료취약지 및 사각지대 환자를 우선해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구체적 허용 범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의료현안협의체 중단이 장기화하면 제때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비대면 진료 서비스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복지부는 ‘대면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의 보조적 활용’이라는 방향을 토대로 비대면 진료의 구체적 사항을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하겠다며 의료계에 의료현안협의체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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