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엌의 도마소리와 향기

한상재 고문 한국문협 인니지부

이른 아침이다
다시 도마소리가 들린다.
탁, 탁, 탁……. 탁, 탁, 탁!
매우 즐거운 노래처럼 들린다.

뭔가 기분이 좋아진 도마소리다
안전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오를 지나고 있다
보지도 않는 텔레비전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린다
압력 밥솥에서 나는 소리도 한몫 거둔다, 치익, 치익,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도 들린다
퍼억, 타악, 우리 부엌은 하나의 종합 공연장이다

해질 무렵, 칼, 도마 소리가 이상하기 그지없다
탁탁, 탁탁탁, 탁탁탁, 탁탁, 탁탁탁탁, 타닥, 탁탁!!!
이건 여느 때 도마 소리가 아니다
뭔가 기분이 상했는지 수틀린 소리를 내고 있다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다시 밥 냄새가 스며든다, 된장국 냄새도 난다
보이진 않지만 김치를 꺼내는 것 같다
한바탕 잔치를 끝내고 나면 다시
수돗물 소리가 들리고
딸그락, 딸그락, 쨍그랑, 쨍쨍,
소리와 향기의 향연이 최고다
우리 부엌은 이렇게 하루의 연주회를 끝낸다

시작 노트:
세상은 소리로 꽉 차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 소리를 음音과 성聲으로 구분 해 왔다. 오늘 추천 시는 정제되지 않은 소리聲가 어떻게 우리의 삶과 교감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다 향까지 더해지니 최고의 향연임에 틀림없으리라. 설령 작가는 “부엌의 소리와 향기를 통해 내 처의 기분을 맞추고 산다”고 너스레를 떨지라도 시를 읽는 이는 내내 소리잔치로 흐뭇하다. 김주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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