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전기차허브 경쟁…韓·인도네시아 vs 日·태국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미국에서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자국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광폭 외교행보를 선보이며 텍사스에 위치한 스페이스 X의 본사에서 일론 머스크를 만난 일이 화제가 되었다.

아세안-미국 특별 정상회의 참석차 워싱턴에 날아간 조코위 대통령은 공급망 위기가 고조된 지금 인도네시아가 가진 풍부한 자원과 디지털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 투자기회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리더인 테슬라 기가팩토리와 우주선 발사대 유치는 신흥시장에서 인도네시아의 위상을 한껏 올려줄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총력전을 펼쳤던 것이다.

◇몸값 오른 인도네시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 덕에 석탄, 니켈, 구리, 보크사이트 등 다양한 자원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경제적 수혜를 받고 있다. 4월 인도네시아의 무역수지 흑자는 75억6000만 달러(약 9조6000억원)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에게 유리한 국면이 유지되고 있으나 이러한 기회가 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광물 자원을 캐서 그대로 수출하는 사업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며 글로벌 경기 변동에 그대로 위험이 노출된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곧바로 가격이 출렁거리는데다 환율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인도네시아 정부 입장에서는 원자재 그대로 수출하기 보다는 한번이라도 더 가공 단계를 거친 반제품 또는 완제품 형태로 수출함으로써 국제 원자재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이고 자국내 원자재 가공산업 육성을 통한 GDP 제고를 목표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 니켈이나 알루미늄 소재 보크사이트의 원광수출을 2019년 말부터 금지한 이유는 이 같은 맥락에서 기인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를 투자 기회 레버리지로 삼아 전기차 밸류체인 레벨업
여러 원자재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니켈이다. 니켈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선두에 있는 삼원계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필수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니켈 수출국이면서 최대 니켈 매장량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는 원료생산부터 전기차 생산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자국내에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자국 내에서 채굴부터 정련, 제련을 거쳐야만 수출을 허가해주는 압력을 가하면서 동시에 전기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현지 부품과 인력 등 현지화율에 따라 수입 관세와 사치세 면제 등 각종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안정적인 니켈 확보가 절실한 배터리 관련 업체들은 앞다투어 인도네시아 현지 투자 및 생산시설 건립에 나섰다. 6억7천만 명의 거대한 인구를 가진 아세안의 미래 전기차 시장을 노린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과 LG상사 등 그룹내 계열사들뿐만 아니라 LX인터내셔널, 포스코홀딩스, 중국의 화유와 CALT까지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11조 투자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인도네시아 구상은 광물 채굴에서 전구체, 양극재 및 배터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최종 완성차 생산까지 이어지는 종합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그랜드 패키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이다.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지만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을 바탕으로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을 한 지역에서 완결해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결정이다. 아세안의 전기차 허브로 자리매김하려는 큰 그림을 구상하고 관련 기업들에게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내왔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두손들어 환영했다. LG컨소시엄은 현재 국영기업 안탐과 투자회사 IBC와 투자협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배터리뿐만 아니라 완성차 제조업 투자로 화답한 측도 한국 기업, 현대자동차이다. 그동안 아세안 자동차시장은 일본 업체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점유율 70%를 넘는 일본차에 맞서 현대자동차는 전기차에 미래 승부를 걸었다. 2019년 자카르타에서 40km 떨어진 버카시(Bekasi)의 델타마스 (Delta Mas) 공단에 현대차 최초의 아세안 지역 완성차 공장 첫 삽을 떴다.

그리고 2022년 3월 드디어 이 공장에서 아이오닉5 생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국기업들 사이의 연대도 이루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 현대모비스가 함께 ‘에이치엘아이(HLI)그린파워’ 합작사를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것이다.

◇일본기업들의 전기차는 태국을 거점으로
기존 내연기관자동차의 아세안 허브는 태국이 담당했었다. 전기차 시대에도 그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도요타와 닛산, 혼다 등 완성차업체들은 태국 정부의 지원 하에 전기차 생산 계획과 투자를 약속했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 30개의 전기차 모델을 생산, 350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닛산과 혼다의 하이브리드 차량과 배터리 프로젝트는 2018년 승인을 받고 각각 3억1800만 달러, 1억6800만 달러가 진행되었다.

포드와 마즈다 차량을 조립 생산하는 오토 얼라이언스(Auto Alliance)도 9400만 달러를 전기차 생산에 투입했다. 전기차에서 앞서가는 중국의 약진도 기대를 모았다. 자유무역지대 덕택에 중국 전기차에 부과되는 수입관세가 전혀 없는데다 태국정부의 전기차 보조금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기업들을 유치하고 테슬라까지 끌어들이려는 인도네시아의 행보에 태국 정부가 다소 긴장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도쿄에서 열린 니케이 포럼에서 쁘라윳 총리는 전기차 글로벌 허브 육성 계획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일본의 투자와 기술이전을 촉구했다.

태국의 제2위 교역국이 일본이고 일본자동차 업계가 오랜 기간 태국에 뿌리를 내렸으며, 전기전자업과 인프라 기반 측면에서도 인도네시아보다 자신들이 파트너로 더 적합하다는 점을 재차 부각시켰다. 태국 정부는 지난 3월 추가 혜택도 발표했다. 소규모 충전소에 3년간 세제혜택과 더불어 최소 40개 이상 충전기를 갖춘 충전소의 경우 투자금에 최대 5년간 법인세 면제 혜택이라는 추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아세안 전기차 허브를 둘러싼 경쟁
현대차 공장 준공식에는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 정부 고위직들이 총출동했다. 그리고 줄곧 인도네시아 진출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던 일론 머스크를 조코위 대통령이 직접 찾아갔다. 전기차 시장의 확대와 맞물려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가 고조된 지금 외국 기업들의 투자와 기술이전의 지렛대로 삼을 기회를 최대한 살려 보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자동차기업들은 태국을 중심으로, 한국의 배터리와 자동차기업들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밸류체인을 꾸리고 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사이의 전기차 허브 경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만일 테슬라가 인도네시아로 향한다면, 인도네시아 기반으로 미국의 테슬라와 한국기업들이 태국의 일본기업들과 맞붙는 배터리-전기차 대립 전선이 형성된다.

6억7000만명의 아세안 시장 그리고 더 큰 글로벌 공급망을 두고 거대한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배터리와 전기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원자재와 국제정세에 따라 요동치는 특정국의 시장을 놓고 다투는 쟁탈전이 아니라 글로벌 밸류체인의 더 큰 구도에서 아세안진출계획을 그려봐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 고영경 말레이시아 선웨이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