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차단제 고르는 법 3가지

Step 1 차단

자외선차단제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바로 차단 효과입니다.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자외선A(320~400nm), 자외선B(280~320nm), 자외선C(100~280nm)로 나뉘는데요. 각각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파장이 긴 자외선A는 피부 속 진피까지 도달해 노화(Aging)를 촉진하고, 자외선B는 표피에서 흡수, 산란되면서 화상(Burn)을 일으킵니다. 파장이 가장 짧은 자외선C는 암(Cancer)을 유발할 수 있죠. 다행히 자외선C는 오존층에서 대부분 걸러지고, 지표까지 도달하는 것은 주로 자외선A와 자외선B입니다. 자외선차단제는 이 둘을 동시에 막아내야 합니다. 따라서 차단 효과를 따질 때는 커버할 수 있는 자외선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가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 유기필터 vs. 무기필터

자외선A와 자외선B는 차단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자외선A는 주로 이산화티탄(TiO2)이나 산화아연(ZnO) 분말을 이용합니다. 나노 크기의 분말을 피부에 발라 자외선A를 물리적으로 산란시키죠. 보통 무기 자외선차단제라고 부릅니다. 너무 많이 바르면 얼굴이 허옇게 보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반면 자외선B는 유기 자외선차단제를 이용합니다. 옥시벤존(벤조페논-3), 뷰틸메톡시디벤조일메테인 같은 약 20가지의 유기화합물 중 5가지 정도를 조합해서 만들어요. 유기화합물이 자외선B를 흡수해 열에너지로 분산시키는 원리입니다. 각각의 유기화합물은 조금씩 다른 영역대의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섞어 쓰면 더 넓은 범위의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자외선차단제에는 이런 무기 자외선차단제와 유기 자외선차단제가 둘 다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하는 방법이 다양하니 라벨을 잘 봐주세요. 힌트는 PA등급과 SPF지수입니다. 각각 자외선 A, B와 관련 있는 지표지요. 만약 실내에서 주로 생활한다면 SPF지수가 15, PA등급이 +이상이면 충분합니다. 창문을 통해 자외선B, 자외선C가 대부분 걸러지고, 형광등에서 나오는 자외선도 형광등 안쪽에 코팅된 이산화티탄 성분이 산란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면 해변에서 피부를 구릿빛으로 그을리기 위해서는 자외선B는 강력하게 막고 자외선A는 거의 막지 않는 제품을 골라야 합니다. 색소침착을 유도하는 것은 자외선B가 아닌 자외선A이거든요. 즉 PA등급은 낮고 SPF 지수가 높을수록 좋습니다. 애초에 자외선A만 방출하는 태닝 기계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GIB 제공

과학동아 제공

● 끈적끈적할수록 차단 효과 UP

차단제 성분 외에 베이스 성분과 제품의 물성도 차단 효과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실 차단 효과를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차단제의 농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비어-람버트 법칙에 따라 차단제를 바른 두께와 농도가 클수록 빛의 흡수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도가 아주 많이 높아지면 피부에 해롭습니다. 화장품 회사들이 복잡한 우회로를 찾는 이유입니다.

한불화장품 기술연구원 화장품연구소 연구팀은 같은 농도의 자외선차단제라도 점도가 다르면 차단 효과가 달라진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네 종의 유기 자외선차단제 성분으로 에멀젼을 만든 뒤, 점도를 다르게 했더니 자외선 SPF가 15.15에서 70.01까지 점도와 비례해 증가했습니다. 연구팀은 에멀젼의 점성과 탄성이 높으면 피부 위에서 화학 성분들이 구조를 회복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결과적으로 균일한 차단막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찐득찐득해서 바르면 불쾌한 자외선차단제가 차단 효과는 더 높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doi:10.12925/jkocs.2014.31.3.422).

Step 2 민감성

다른 화장품과 달리 자외선차단제는 유독 ‘순한’ 제품을 고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피부 좀 아껴보겠다고 발랐다가 여드름과 같은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이렇게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은 차라리 긴 옷으로 햇볕을 가리고, 자외선차단제를 최대한 적게 쓰는 것이 답입니다.

● 무기 자외선차단제는 안전하다?

자외선차단제에는 근본적인 위험성이 있습니다. 자외선을 흡수하는 유기 자외선차단제는 자외선B를 흡수해 무해한 열에너지 형태로 바꿔 없애는데,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와 같은 유해한 광 생성물이 생깁니다. 피부세포를 손상시킬 가능성이 다분하죠. 자외선차단제가 피부에 흡수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난해 4월 열린 제98회 미국내분비학회에서는 유기 자외선차단제가 남성의 정자 세포 기능을 방해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요. 덴마크 코펜하겐대 닐스 스카케벡 교수팀이 29가지 유기 자외선차단제 성분을 조사한 결과, 13가지가 피부를 통해 빠르게 흡수되고 남성 생식에 필수적인 정자의 칼슘이온 회로를 차단한다고 합니다. 13가지 성분 가운데 8가지는 이미 미국에서 승인을 받고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무기 자외선차단제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아기용 천연 자외선차단제라고 광고하는 제품들도 실은 녹차추출물, 올리브오일과 함께 이산화티탄(TiO2)이나 산화아연(ZnO)이 들어 있는 무기 자외선차단제더군요. 무기 자외선차단제가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은 유기 자외선차단제에 비해 시중의 제품군이 적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겁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나노 크기인 무기 자외선차단제의 안전성 논란이 시끄러웠으니 말입니다. 유럽연합(EU) 화장품 안전성 평가위원회(SCCS)는 차단제 물질의 순도, 결정 구조, 용매, 사용 면적까지 제한하는 아주 까다로운 조건 하에 무기 자외선차단제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Pubchem, 과학동아 제공

Pubchem, 과학동아 제공

우리가 기다리는 진짜 천연 자외선차단제는 아직 기초 연구 단계입니다. 식물 역시 태양의 자외선 때문에 DNA가 손상되고, 성장이 저해될 것을 우려해 자외선차단물질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데, 그중 하나가 ‘시나포일 말레이트(Sinapoyl malate)’라는 성분입니다. 2014년부터 시나포일 말레이트의 자외선B 흡수 특성
을 연구해온 영국 워릭대 화학과 바실리오스 스타브로스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다음 세대의 자외선차단제는 자연에서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식용, 약용으로 쓰이는 국화과 꽃의 추출물, 해조류에 들어있는 마이코스포린유사아미노산(MAAs) 성분 등을 천연 자외선차단제 후보 물질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Step 3 지속성

자외선차단제는 두 시간에 한 번씩 덧발라야 합니다.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요.) 이유는 기본적으로 유기 자외선차단제 물질이 일회성(?)이기 때문입니다. 빛을 흡수한 뒤 들뜬 상태가 되면 물질의 구조가 깨지면서 열을 방출합니다. 물질은 더 이상 자외선을 흡수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립니다.

● 덧바르지 않아도 되는 자외선차단제

그런데 지난 4월 ‘미국화학학회(ACS)’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영국 워릭대 화학과 바실리오스 스타브로스 교수팀은 유기 자외선차단제 물질 중 하나인 옥시벤존 분자가 빛을 흡수해 들뜬 상태가 됐을 때, 90%는 분해되며 열을 방출하지만 10%는 깨지지 않고 들뜬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물체에 빛을 쪼인 뒤 빛을 제거해도 장시간 빛을 내는 인광 현상과 유사합니다.

과학동아 제공

과학동아 제공

연구팀은 들뜬 상태에 머물러 있는 옥시벤존 원자들이 특정 결합을 중심으로 회전돼 있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스타브로스 교수는 “회전 부위를 조작하거나 물질에 진동을 일으켜 초과한 에너지를 열로 바꾸면 물질을 다시 안정된 바닥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며 “자외선을 흡수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영원히 재사용할 수 있는 자외선차단제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옮길 계획입니다. 스타브로스 교수는 “들뜬 상태의 자외선차단제 물질이 어떻게 열을 발산하는지 메커니즘을 밝히면 활성산소로 인한 피부 독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한편 피부발림성과 지속성을 논하는 데 용매도 빼놓을 수 없는 기준입니다. 보통 자외선차단제는 땀이나 물로 씻겨 없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일을 용매로 사용합니다.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후에 피부가 번들거리는 것도 바로 이 오일 탓입니다. 유기 자외선차단제는 화학적 원리를 이용하는 성분인 만큼 비공유 전자쌍이 많고 전기 음성도(전자를 끌어들이는 정도) 값이 큰 편입니다.

분자들의 극성도 높습니다. 때문에 이 성분들을 효과적으로 용해시키기 위해서는 극성이 높은 오일이 필요합니다. 극성이 높으면 원료 사이의 전자 이동이 적어서 자외선차단제가 안정해집니다. 단 아무리 안정한 자외선차단제라도 너무 차갑게 보관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온도가 낮아질수록 용매의 용해도는 낮아집니다. 애써 고른 자외선차단제에서 차단 성분이 빠져나오면 낭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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