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그가 1965년 인도네시아를 담아내는 방식

가해자의 시선으로, <액트 오브 킬링>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은 제목이 시사하듯, 문자 그대로 ‘살인을 연기’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이다. 우선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인 조슈아 오펜하이머가 이 영화를 어떻게 담아냈는지를 이야기하려면, <액트 오브 킬링>의 내용과 어떻게 해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설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1965년 인도네시아의 쿠데타 당시 군(혹은 군으로 위장된 정부가 고용한 조직폭력배)은 ‘반공산주의’를 명분으로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고 무자비한 행동을 일삼았는데, 그 과정에서 100만 여명이 넘는 지식인들과 공산주의자들, 무고한 중국인들을 희생되었다.

그리고 40여년이 흘렀다. 여전히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의 대학살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고 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정부로부터 비호를 받으며 호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개중에는 대학살의 주범인 민간인 학살자, ‘안와르 콩고’가 있다.

조슈아는 대학살의 가해자들에게 그들의 ‘살인 업적’을 영화로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그들 삶에 당당한 가해자들은 흔쾌히 응하고 그들만의 영화로 또 다른 업적을 남기려한다. 그렇게 <액트 오브 킬링>은 안와르 콩고를 중심으로 범죄자들이 그 당시의 일들을 재연하는 과정을 담게 된다. 즉, 가해자들이 살인을 연기하는 것이다.

감독인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이 영화로 다큐멘터리의 거장으로 거듭났으며 이 영화도 무려 72개의 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별한 이야기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1965년의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재연할 뿐인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가 어떻게 이러한 유례없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일까?
조슈아, 그가 1965년 인도네시아를 담아내는 방식

첫째, 그 배경에는 조슈아가 살인 연기를 담아내는 ‘방식’에 있다. 사실 조슈아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찍으려던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런 식이란 대학살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촬영한 것을 말한다. 처음에 조슈아는 인도네시아의 노동자와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를 담아 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당시 대학살을 이끈 판차실라 청년회, 즉 군부 독재자들의 방해로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의 방향은 이로 인해 급선회하게 되고 그 대학살의 주범인 독재자들에게 ‘당신들의 대학살 업적을 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들이 한 짓을 자랑스러워하고 보여주고 싶기에 흔쾌히 촬영에 임한다. 시나리오와 살인의 재연 방식 등은 모두 가해자인 그들 스스로가 정하며 즐거워한다. 대학살은 철저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과정이 되었고 조슈아는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거리를 두어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영화를 촬영했기에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주안점은 대학살의 가해자가 역으로 영화 속 피해자를 연기한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조슈아에게 그들의 과거 행적을 이야기할 때, ‘죽일 수밖에 없었다.’라며 과거를 정당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직접 죽이고 고문했던 피해자를 연기를 거듭하면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 안와르 콩고는 영화의 끝에 가서 그가 당시 대학살을 행했던 옥상에 올라간다. 그리고 그 스스로에게 역겨움을 느끼며 감히 피해자의 심정을 짐작해본다. 그가 처음으로 ‘내가 죄를 지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안와르 콩고는 자아 분열적인 모습을 보인다.

TAoK-credits마지막으로는 조슈아의 독특한 촬영방식인 엔딩 크레딧에 올라간 수많은 ‘Anonymous’에 있다. 촬영에 임해준 수많은 실제 피해자들과 보복을 두려워한 스텝들에 실명 대신 익명으로 크레딧에 올린 것이다. 마지막까지 관객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지점을 던져준 것이다.

물론 그러한 진실을 표현한 방식 모두가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많은 비평가와 관객들이 감탄한 여러 장면이 이 영화를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선상에 올려둔 것에 공감하고 역시 감탄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지점들도 꽤 있었던 것이다.

우선,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성적으로 유린당하거나 혹은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등 여성의 등장이 제한적인 역할로서 쓰인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피해자들은 겁탈한 것을 업적처럼 이야기한다.

여성 골프 캐디나 사진을 찍어달라는 여성을 두고 대놓고 성희롱을 하는 등 성적으로 유린당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 장면들은 다큐멘터리에 여과 없이 담긴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의 처음과 끝에 색색의 고운 옷들을 입고 춤을 추는 여자들이 나온다. 그 외에 여성들이 등장해 대사하거나 의견을 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둘째는 아직 가해자들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을 데려다가 영화 촬영에 임하게 한 점이다. 40여 년이 흘러도 여전히 대학살의 가해자들이 ‘국민영웅’으로 불리는 때이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촬영요구를 거부하면 보복이 있을 거란 생각에 저항하지 못하고 당시의 기억을 끌어올려 다시 한 번 피해를 받게 된다.

실제 피해자의 한 명으로 등장한 수리오노는 자신이 어렸을 적 끌려간 중국인 새아버지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장면에서의 수리오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수리오노(피해자)는 안와르 콩고(가해자) 앞에서 ‘약속하는데 전 우리가 하는 일을 비난할 생각 없어요, 그냥 영화 소재일 뿐이잖아요. 절대 비난 안 할 거예요.’라 말한다.

가해자 앞에서 피해 사실을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꺼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안와를 콩고가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는 상황에서, 아직도 영향력이 농후한 가해자들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수리오노는 촬영에서 다시 한 번 피해자로 서게 된다. 실로 잔인한 요구다.

나는 조슈아가 감독이라는 자리에서 영화의 형식을 빌려와 미디어를 통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하고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가해자가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인도네시아의 현주소에 감추어진 진실을 끝까지 용기 있게 파헤쳤고 (실제로 조슈아는 촬영 기간 동안 살해위협을 받아 여러 번 촬영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가해자들의 잘못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피해자들과 잠재적 피해자들을 철저히 보호해주려 하고 있다.

또한 그의 이런 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견주어볼 때, 조슈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문학의 교훈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모든 것을 담고자 결국엔 많은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자극했다는 사실과, 인물을 도구적으로 소비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아트인사이트 / 박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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