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서부자바 중심지 반둥을 느끼다

2015년 4월 7일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아직은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생소한 미지의 세계가 아닐까 합니다. 저와 같은 새내기들뿐 아니라, 현지에서 오래 생활하신 분들도 일이 바빠서, 혹은 기회가 없어서 인도네시아 인들의 문화와 생각, 삶의 방식을 잘 알지 못하고 orang asing (낯선 사람)으로만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깨닫게 해주는 보람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새벽 6시, 연구원을 출발하며 바로 찾아온 멀미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에 와서 가장 힘든 부분이 차를 오래 타면 멀미를 하는 것입니다. 지독한 멀미 증상에 출발부터 이번 탐방에 참여한 제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간식과 반둥 팸플릿을 나눠받고 사공경원장님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orang korea(한국사람)라는 단어밖에 모르는 저에게는 설명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이어지는 자기소개 시간에 탐방대원들의 성별, 나이,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온지 일주일 된 저부터 2~30년이 넘는 분들까지 다양했습니다. (중략)

이런저런 사색에 빠져 창 밖을 보니 어느새 울창한 숲입니다. 바쁘게 작은 차를 갈아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립니다. 넓디 넓은 호수(분화호)-까와뿌띠(Kawah Putih)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은 가시지 않은 멀미 증상에 정신을 집중하고 또 집중하고.. 그리고 도착한 까와뿌띠.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장관에 멀미증상은 사라지고 우리 탐방대원들이 모두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사가 하강했다는 이곳의 전설처럼.

신과 사람이 만날 수 있다면 그 장소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요? 접해보지 못한 대자연의 장엄함에 제 카메라 셔터는 쉴 줄을 몰랐습니다. 함께 모여 사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거짓말처럼 옥빛의 수면 위로 구름이 내려앉았습니다. 그 신비한 광경을 눈에 담으려는 순간 또 다시 그 님은 사라져갑니다. 잡지 못하게 멀리멀리 사라져버렸습니다. 마치 다시 돌아오지 못할 첫 사랑처럼. 1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자연에게 이런 진한 감동을 받은 것은 단연코 처음이었습니다.

해발 2090m의 고도에 8미터의 깊이인 흰 분화구! 다시 한번 꼭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빠뗑강 호수 (Situ Patenggang)로 갑니다. 가는 길에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녹차 밭은 밭인지 산인지 사방에 병풍처럼 펼쳐져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오리지날 현지식을 맛본 것은 처음 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어느새 우리는 식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음식도 큰 이질감 없이 맛있었지만 밥을 먹는 분위기는 최고였습니다. 논밭이 보이고 창문이 없어 야외에서 먹는 느낌이었는데 초가집 같은 분위기와, 식탁 옆의 작은 연못과 물고기들. 그리고 운치를 더해주는 소나기까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식사하면서 이런 감동이라니^^

그 다음 목적지는 lembang에 있는 Floating Market(Pasar Apung)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에 배도 탈 수 있고, 기념품도 살 수 있는 곳입니다. 호수가장자리에 작은 배를 띄워놓고 먹거리를 파는 사람들. 수상시장이라고해야하나. 막내 동생 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과일을 팔고 있습니다. 측은함이 듭니다. 저녁도 산속의 정원 같은 깜뿡다운 (Kampung Daun)에서 인니전통식사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는 소나기가 밉지만은 않습니다. 운치를 더해주니까요. 식사 후 숙소인 Universal Hotel에서 ‘자바의 파리’를 느끼며 하루를 마쳤습니다.

탐방 이틀째. 8시 30분경 상쾌한 기분으로 Juanda공원으로 갔습니다. Juanda 공원 산책로에는 5개의폭포가 있습니다. 폭포를 구경하면서 1시간 넘게 걸어간 목적지에 네덜란드 굴(Gua Belanda)이 있습니다.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인도네시아. 우리에게 아픔이 있듯 이곳에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1918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강제 동원해 만든 곳으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아픔의 장소였습니다. 동굴 내부는 감옥, 대피소, 무기저장고 등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조명이 설치되어 있으나 켜지 않고 손전등을 나눠주어 구경하도록 합니다. 일본굴(Gua Jepang)도 근처에 있는데 일본굴 또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강제 동원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350년을 통치한 네덜란드시절보다 3년을 통치한 일본시절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겐 더 혹독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음 장소는 selasar sunaryo art space (SSAS)입니다. 대가 수나르요(Sunaryo) 선생님은 사라져가는 원시문명과 자연에 대한 애정, 산업화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추상적인 설치미술로 표현하는 인도네시아 대표적 예술가셨습니다. 다음 장소는 Saung Angklung Udjo 공연장. 서양인,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등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공연은 아름다운 연주소리가 소박하면서도 애절하기도 한, 가슴을 설레게 해주는 마법의 연주였습니다. 시각적, 청각적 그리고 심적으로 아름다움과 화합의 연주로, 공연장에 있는 다국적 사람들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주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탐방 삼 일째. sangria는 객실에서 반둥의 대자연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리조트입니다. Bandung Lembang에 있는 호텔의 장점은 사방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는 것 입니다. 다듬어 지지 않은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첫 탐방지는 Tangkuban Parahu 화산에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에 모두가 즐겁습니다. 계란도 삶아 먹고 따듯한 물에 발도 담그고 마사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념품 구입 팁은 가실 때 사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도착해서 바로 샀더니 두 배의 가격으로 목걸이와 팔찌를 사서 속상했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창의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조각공원 Nyoman Nuarta을 관람하고 서부자바 시청을 보고 46억년의 자연사를 볼 수 있는 반둥 Museum Geologi에서 지구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오래된 선사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인도네시아를 배웠습니다.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삶의 모습을 보고 온 저는 탐방프로그램의 취지에 부합하는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탐방하던 순간순간을 기억하며 감회가 새롭습니다. 현지인들의 의식주 생활, 외세의 침입과 통치를 받았음에도 외국인들을 보면 웃으며 인사하고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이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들은 미개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문화를,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세계에 알리는 진정한 한 나라의 국민들입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와 현지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선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조금 더 성숙하게 함으로 대한민국을 더 알리고 인도네시아를 발전시키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렇게 좋은 행사를 주최하시는 한*인니문화연구원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최우호 (UI BIPA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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