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국내 A기업은 제품을 보낼 선박 구하기에 고심이 깊다. 연말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하루가 다르게 운임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대목에 맞춰 늦어도 다음 달 말까지는 납품을 마쳐야 하는데 선박이 부족하다보니 현장에선 부르는 게 값이 됐다. A업체 관계자는 “북미까지 운임이 6000달러대라고 하는데 현장 스팟요금은 1만달러에 육박한 실정이다. 이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자장비를 수출하는 B업체도 마찬가지다. 해운운임이 치솟자 대안으로 항공운송으로 눈을 돌렸지만 최근 이마저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마진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항공운임이 1kg 10달러를 넘어가면 수출을 당분간 중단해야 할지 고민이다. B업체 관계자는 “경기가 회복되는 시기 수출을 재개하면 해외 바이어가 끊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우선 관계유지를 위해 납품을 지속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해상운임에 이어 항공운임까지 급등하면서 수출기업 부담이 크게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불거진 물류대란 여파가 연중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물류비용이 크게 늘고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아 연말 대목을 앞두고도 국내 수출기업의 표정은 어둡다.
치솟는 항공운임, 울고싶은 수출기업
항공기를 이용한 수출입은 반도체·컴퓨터 등 IT품목과 의약품이 주를 이룬다. 대략 국내 수출의 3분의 1을 항공이, 나머지 3분의 2가량을 해상이 맡는다. 항공운송은 지난해부터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들어선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난 데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대용량 저장장치 SSD 등 우리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IT제품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면서다.
코로나19로 인해 백신이나 의약품 역시 항공기를 이용한 국제거래가 부쩍 늘었다. 국내 한 대형 의약품위탁생산(CMO) 업체 관계자는 “통상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상대 거래처에서 운임을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운송비 상승이 직접 부담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의약품의 경우 신속하고 안전한 운송을 위해 항공기를 주로 이용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영향이 없을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 없는 물류난… 내년 이후 안정화되나
문제는 앞으로도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나 해운사·항공사 등이 함께 화물운송 공급을 늘려나가고 있으나 여전히 공급이 부족해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출 대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물류비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31% 정도 오른데 이어 하반기에도 24%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기업 열 곳 가운데 아홉 곳 이상이 내년 이후에야 물류비가 안정화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특히 내년 하반기 이후로 내다보는 곳이 70%에 달하는 등 앞으로도 물류난이 오랜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통상 장기 계약을 맺어 물류비 인상이 당장 부담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기 형태로 진행하는 물량도 3분의 1 정도로 상당하다”며 “당장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운송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데 따른 납기지연, 그로 인한 부대비용이나 거래처 단절 등 부수적인 피해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출입물류 비상대응 TF를 꾸려 각종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국내외 공항이나 항만이 유기적으로 얽힌 문제인 만큼 각종 지원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현지의 항만과 내륙운송 적체가 쉽게 풀리지 않는 데다 보관할 창고나 물류센터도 제때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전날 수출입물류 비상대응 전담반(TF)‘ 회의를 열고 물류대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기업을 위해 해외 물류거점 제공, 현지 내륙운송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추가 지원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우선 현지 물류에 어려움을 겪는 수출기업을 위해 부산항만공사와 KOTRA가 10∼20% 낮은 비용으로 화물을 보관할 수 있는 공동물류센터를 해외 물류 수요가 높은 곳에 조기에 구축할 예정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센터가 1만5000㎡ 규모로 내년 1월 개소하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인도네시아 자바 센터도 내년 상반기 중 문을 연다.
기존의 해외 공동물류센터는 내년도 예산을 확충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내륙운송 수단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화주들을 위해 해상운송과 트럭 등 현지 물류를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