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블룸버그>는 자체적으로 조사한 코로나 회복성 순위에서 싱가포르가 뉴질랜드를 누르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엄격한 검역 프로그램으로 신규 확진자 수가 거의 0에 가깝게 줄었고, 거기에 백신 접종도 아시아에서 제일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종합병원을 시작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건 그 다음 날부터였습니다. 이후 탄톡생 종합병원에서만 48명, 가장 큰 클러스터가 된 창이공항에서는 108명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5월 5일, 집합 최대인원을 5명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긴급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코로나 고위험 국가에서 온 여행객에 대한 자가격리 기간도 2주에서 3주로 연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확진자 수가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자 5월 14일에는 집합 최대인원을 2명으로 줄이고, 모든 식당의 문을 닫고 포장 및 배달만 허용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올해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른바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세계경제포럼과 아태지역 주요국 안보 수장들의 회의인 ‘샹그릴라 대화’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5월 말로 예정되었던 싱가포르와 홍콩 간 무격리 자유여행인 ‘트래블 버블’도 취소되었습니다.
싱가포르,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작년보다 더 심각한 동남아싱가포르만 이런 상황인 건 아닙니다. 태국은 송크란 축제 이후 확진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작년 한 해 태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7천여 명이었는데 4월 이후에는 매일 하루 천 명 이상씩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2020년 코로나 방역 최고 모범국이던 대만의 경우는 하루 수백 명 단위의 갑작스러운 확산 속에 대만 총통의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말레이시아도 하루 7천여 명으로 연일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필리핀, 네팔, 캄보디아 등에서도 작년에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확산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백신 접종의 효과로 확진자 수도 줄어드는 추세고,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마스크를 벗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작년에 비해 올 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하루 500-7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는 확진자 수나, 아직 4%도 안 되는 백신 접종 완료자 수를 봤을 때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동남아시아의 상황에 더 가깝다고 판단하고 대응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야 할 겁니다.
방역모범국에서 록다운까지 걸린 기간, 단 3주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정부는 다음달부터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자를 직계가족 모임 인원 제한 대상에서 빼주기로 했습니다. 거기에 7월부터는 1차 접종만으로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다중이용시설 이용과 종교 활동도 자유롭게 하도록 했습니다. 이 모든 게 백신을 접종한 사람에게 이익을 줘서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닐까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접종을 한다면서 코로나 예방에 효과적인 마스크를 벗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요? 세계에서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평가받던 싱가포르에서 갑자기 크게 늘어난 확진자 수로 인해 온 나라가 록다운 되는데 3주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스크도 쓰고, 사적 모임 인원 제한도 유지하고, 재택근무도 계속 하면서 지속적으로 관리 했음에도 병원과 공항에서 시작된 갑작스러운 확산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쪽에 속한다는 백신 접종률 34%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작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현 상황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서 교류하는 건 백신 접종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 집단면역이 이루어진 후에나 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아직은 마스크를 벗을 때가 아닙니다. 너무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마이뉴스 이봉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