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워크숍의 어느 과정에선가 달라이라마의 새천년 법어(法語)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19개 항목이 다 주옥 같은 말씀이었지만, 한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일년에 한번은 전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보라”
10년 전 만 해도 내자(內子)나 나나 아직 몸이 가벼워, 어느 해인가에는 달라이라마가 주신 연간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한 적이 있었다.
5월에는 카르타고 유적지 북 아프리카 튜니지아, 10월에는 중국의 장강 삼협[長江 三峽]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고, 마지막으로 11월 말에는 8박9일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북인도 지역의 여섯 도시 델리-자이푸르-아그라-오차-카주라호-바라나시 등을 엮는 조금 벅찬 일정이었다.
튜니지아 여행을 일컬어, 지중해 해변의 맑고 짙푸른 하늘과 바다, 사하라 사막의 희고 고운 모래 구릉(丘陵),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오렌지와 퍼플 색조를 내뿜는 신기루 같은 염호(鹽湖), 황야를 달리는 ‘붉은 도마뱀 열차’, 황무지의 일몰무대(日沒舞臺)를 내려 덮는 짙은 보라색의 벨벳 커튼 같은 어둠,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오아시스의 5성급 천막 야영(野營) 등을 보석 꿰 듯 엮어 그린 정갈하고 아름다운 연작(連作) 수채화라 부른다면,
장강 삼협 여행은, 하늘에 닿아 흐르는 물길, 자욱한 안개가 여백 되어 펼쳐진 비단 화폭 위에, 깎아지른 푸른 암벽과 수목, 그리고 옛 시인묵객의 시부(詩賦) 운률(韻律)까지 담채(淡彩)로 그려 담은 여러 폭 동양화의 신운(神韻) 체험이었다고 할까?
그렇다면 인도 여행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믿을 수 없이 다양한 인도적(印度的) 삶이 7천 년의 세월을 연면(連綿)히 흘러 오늘에 이르는 어김없는 현장을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의 울림으로 바라보며 얻는 찬탄과 탄식의 태피스트리 직조(織造) 같은 것. 섬세함과 거친 터치를 자유자재로, 호사로움과 암울한 채색을 부사의(不思議)하게 뒤섞어 그린 오래된 유화(油畵)를, 덮인 먼지 후후 불어 내고 눈 비비며 보는, 다소 불편하기도 한 그런 감동.
아그라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건축물, 대리석 묘묘(墓廟) 타지마할에 담긴 황제의 애비(愛妃)에 대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 그 섬세하고 호사스러운 아름다움의 극치를 직접 두 손으로 쓰다듬어 몸에 담아두었다.
다음날, 카주라호에 이동하여 천년 전 찬달라 왕조에 의하여 건설되었다는 사원군(寺院群)의 미투나 상(像) 조각에서 만난 자유분방하고 에로틱한 천녀(天女)들의 모습, 익살스럽고 창의적인 카마수트라 교합상(交合像). 성(性)의 희열을 열반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당시 인도인들의 천연덕스러운 소망이 예술성의 바탕 위에 에로스의 모습으로 꽃 피워 응집된 것을 찬탄한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로 이동하여, 자전거 인력거인 릭샤를 타고 지근거리(至近距離)까지 접근하여 체험한 저자바닥은 오전에 황홀했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충격 그 자체였다. 매연, 소음, 오물 냄새, 자전거, 오토바이, 삼륜차 택시, 그 사이를 경적 요란히 울리며 비집는 승용차들, 쏟아져 나온 행인, 혼잡을 집 삼고 유유자적 어슬렁거리는 주인 없는 소들과 버려진 개들의 무리, 비둘기 떼는 또 얼마나 극성이었든지. 틈만 보이면 당당하게 ‘원 달러(One dollar)’를 구걸하며 여행객의 옷깃을 잡는 끈질긴 걸인들도 거리의 당당한 주역(主役)이었다. 이 속에 뒤엉켜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혼잡을 강렬한 호기심으로 참아내면서 생각했다. 이 흐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질서는 과연 무엇일까?
저자 바닥을 간신히 벗어나면 힌두교도들이 ‘어머니 강(江)’이라고 부르는 간지스강[Ganga-불경에 나오는 恒河]의 서쪽 강둑에 이르게 된다. 다음 날 새벽 해 뜨기 전 이 강둑에 다시 와, 노 젓는 나루 배로 강을 오르내리며 마침내 앞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강 동안(東岸)에서는 붉은 일출이 새벽을 장엄하고 있었다. 그것이 살아있는 이들이 맞는 새 아침이었다면, 서안(西岸)에 위치한 노천 화장터[Cremation Ghat]에서 새벽 일찍 장작을 지핀 장례 두엇은 누군가가 살고 간 삶의 마침이었다. 같은 시각, 인접한 목욕 터[Bathing Ghat]에서는, 이들 모두 아랑곳 없이, 순례자들의 침례 의식과 신도들의 아침 목욕이 어머니 간지스[Ganga]에 바치는 아침 예배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그런 일상(日常)이 펼쳐진다.
2,500여 년 전, 35세 고타마가 가졌던 깨달음의 순간에도 먼동은 네란자라 강 동쪽 둔덕에서 그렇게 떠올랐을 것이다.
사성제의 첫 가르침이 베풀어진 바라나시의 사르나트[鹿野苑] 유적지, 반쯤 무너진 스투파를 세 번 돌고, 예배처에 절 하고 잠시 좌선하면서,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참여한 복 있는 다섯 사문(沙門)을 머리에 떠올리고 미소 지었다.
삶도, 일도, 죽음도,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기약 없는 여행의 일부일 뿐이다.
여행을 통하여 얻은 코치의 새삼스러운 자기성찰이다.
그러고 보니 달라이라마 새천년 법어에 기억 나는 말씀이 하나 더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 때때로 대단한 행운의 시작임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