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은 해외 이코노미스트 12명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신종 코로나가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긴급 진단했다. 이들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또 현재 추산되고 있는 경제적 피해는 모두 신종 코로나가 조기 진압됐을 때를 가정한 것”이라며 “신종 코로나가 팬데믹(pandemic·세계 전반으로 확산된 전염병)으로 번질 경우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인트 1│최선의 시나리오도 ‘블랙스완’
전문가들은 “아직 신종 코로나와 관련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 세계 경제가 받을 충격에 대해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면서도 “최선의 시나리오를 가정한다고 해도 일단 2003년 사스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 동안 중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계 금융기관 ING의 로버트 카넬 아·태(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03년 당시 중국의 경제 규모는 2조 달러(약 2357조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4조달러(약 1경6501조원)에 이른다”고 했다.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 더는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 중국에만 머물지 않는다”며 “거대한 경제 주체가 된 중국은 글로벌 공급 체인과 해외 투자 등을 통해 세계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주요 기관은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에 대한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 조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5.9%에서 5.4%로 낮췄고, UBS는 6%에서 5.5%로 하향 조정했다. ‘잘해야 5.5%’라는 것이 전문가 대다수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신종 코로나 사태가 3월 말까지 일단락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2020년 1분기에 중국 경기가 크게 하락하고 나머지 2·3·4분기에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사이몬 뱁티스트 EIU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글로벌 수요가 미진한 상황이라 나머지 분기에서 경기를 회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2020년 2분기까지, 더 나아가 2020년 내내 신종 코로나가 맹위를 떨칠 경우다. EIU의 뱁티스트 이코노미스트는 “신종 코로나가 2020년 말까지 지속하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고, 크리스토퍼 러프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종 코로나가 2020년 2분기까지만 생산 설비를 중단시키고 교통망을 마비시켜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대폭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자체가 아닌 중국을 포함한 각국의 격리 제한과 정서적 파급력만으로도 사태는 국제적인 ‘블랙스완(예측 못한 위기)’으로 비화되고 있다. 뱁티스트 EIU 이코노미스트는 “신종 코로나로 인해 발생할 각국의 잠재적 경제 혼란과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수요 감소를 계산해보면, 현재 2.3%인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2% 이하로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포인트 2│갈 곳 잃은 ‘글로벌 큰 손’…전 세계 수요 충격
당장 충격이 가시화한 부문은 관광이다. 세계 각국이 중국인 관광객 입국을 금지하면서 관광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피터 모리스 애센드바이시리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기준 8조8000억 달러(약 1경419조원)의 GDP와 3억19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 관광 산업에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관광업은 항공·숙박업 등 일부 산업뿐만 아니라 각국의 소비 시장 전반과 연관돼 있다. ‘글로벌 큰손’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각국 수요가 감소할 수도 있다.
마크 윌리엄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전 세계가 경제적 타격을 가장 절실히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인이 관광지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태국이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으로 꼽혔다. 그 다음으로 일본·베트남·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캄보디아가 타격을 받는 지역에 해당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도시 곳곳이 ‘유령 도시’로 변하면서 내수 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중국 후베이성 여러 도시에서는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외출을 삼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우한이 중국 중부의 철도 중심지이기 때문에 중국 주요 도시의 통행망이 마비되면서 내수는 더욱 침체할 것으로 보인다.
과한 불안감을 경계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톈레이 황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연구원은 “사람들이 집에 오랜 시간 머물면, 전자상거래가 활성화할 수도 있다”면서 “여전히 경기는 침체되겠지만 조금이나마 부정적 충격을 상쇄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포인트 3│ ‘세계의 공장’ 멈추자 글로벌 공급망 균열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로 인해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 역할이 차단되며 제조업 분야로 충격이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의 본거지인 허베이성뿐만 아니라 확진자가 늘고 있는 저장성·광둥성과 중국 4대 직할시인 베이징·상하이·충칭도 ‘조업 중단’ 기간을 연장했다. 카넬 ING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지역의 주요 산업인 전자·자동차 산업부터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최근 몇 년간 베트남·태국 등으로 공급망이 확대돼 왔지만 여전히 중국의 비중은 압도적이다”고 했다.
웰스파고증권의 제이 브라이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공장이 멈춰 서는 것은 중국산 부품을 공급받는 타국 공장의 연쇄 휴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윌리엄스 이코노미스트는 “공장 폐쇄가 계속되면 중국발 경제 충격에 가장 많이 노출될 국가는 바로 한국으로, 한국은 대(對)중국 부품 수출액이 GDP의 10%에 달하는 등 중국 공급 체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파장이 구체적인 수치로 가시화하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릴런드 밀러 차이나베이지북 CEO는 “대표적 원자재인 석유와 구리 등의 가격 하락이 심각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2월 4일 원유 가격은 50달러 선이 붕괴하며(미국 뉴욕상업거래소 3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 기준)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구리 가격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포인트 4│미·중 무역전쟁 “미국의 너그러운 배려 필요해”
지난해 1단계 무역 협상 합의를 마쳤던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중국은 합의의 일환으로 2000억 달러(약 236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향후 2년간 추가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중국 경제가 휘청이면서 중국이 합의를 이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미·중 관계는 순탄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MUFG의 러프키 이코노미스트는 “미리 합의를 매듭지어놔서 불확실성을 줄였다”면서 “미국 정부가 기한을 늘려줄 가능성이 커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카넬 ING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국가적 재난 앞에서 미국 정부가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가 중국 정부에 “그럴싸한 변명 거리를 만들어줬다”는 관측도 나온다. 애초 중국이 이행 불가능한 수입 규모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황 PIIE 연구원은 “연구소에 있는 동료들과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리라는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예컨대 중국에서 2019년 돼지 독감 발병으로 비료 수요가 줄었는데 미국산 대두(大豆)를 대량 수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된다는 입장도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가 1단계 합의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뱁티스트 EIU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유예 기간을 주더라도 중국 정부가 합의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설령 신종 코로나가 영향을 미쳤더라도 미국은 중국에 압박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포인트 5│재정·통화 정책 ‘실탄’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전염 상황에 따라 정부가 정책을 달리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카넬 ING 이코노미스트는 “신종 코로나가 ‘중국 전염병’으로 머물지, 한국까지 만연하는 보편 질병으로 번질지에 따라 경제적 영향도 다를 것”이라면서 “전자의 경우 상품 가격과 주요 물가 상승률이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하락하겠지만, 후자의 경우 전면적으로 불경기에 빠진다”라고 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신종 코로나의 골든타임을 1분기로 봤다. 신종 코로나가 이 기간에 잡히면 경제적 영향도 단기에 그치리라는 평가였다. 12명 가운데 3명의 전문가는 신종 코로나가 실제 단기간에 사그라든다는 낙관론도 내놨다. 피터 부크바 블리크린 자문그룹 최고운영책임자는 “신종 코로나가 1분기 경제 성장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바이러스는 봄에 모두 진압될 것이고 중국 경기도 반등하리라고 본다”고 했다.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가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실시할 ‘실탄’을 보유해야 한다는 조언도 주를 이뤘다. 비스와스 IHS마킷 이코노미스트와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이런 극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언제든 이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코노미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