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없는 학교는 없다(21)

(Wednesday, July 16, 2014)

장세라 41아동심리치료사
자카르타거주
[email protected]

군대 총기사건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시끌시끌하다. 임모 병장이 총기 사건을 일으킨 원인으로 학교와 군대에서 경험해온 집단 따돌림을 언급하였는데, 이에 대해 모두들 임병장의 살인이라는 극적인 행동에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겪었을 아픔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집단 따돌림이 만연하다. 고등학생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현상 즈음으로 여겨온 ‘왕따’ 현상은 이제 그 연령대가 점점 내려가 초등학교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직장에서의 따돌림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는 것을 보면, 집단 따돌림이라는 현상은 아이들 사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모든 곳에 이미 자리를 잡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따돌리고 누군가는 따돌림을 당해야만 하는 오늘이 되어 버린 것일까?

피해자와 가해자

학교폭력(bullying)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확히 갈린다.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는 소수가 가해자, 그리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가 피해자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가해자들이 무서워 집단 따돌림을 묵인하게 되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이 아이들은 직접적인 학교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가해자의 행동을 묵인해주는 것 만으로도 피해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그에 맞는 처벌을 받게 되는데 소년법에 의해 보호를 받기도 하지만 만 14세 이상이 되면 형사처벌도 가능해진다. 직접 가해자들을 만나본 결과, 많은 경우 본인들이 아이들 이기 때문에 무조건 용서받을 수 있고 무거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 믿고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며, 가해자는 수강명령 즉 심리상담을 받도록 지시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소년원 생활을 장기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학교폭력이 드러나면 학교측에서는 자치위원회를 열어야 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 있으며, 자치위원회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학교에서 학교 명성에 누가 될까 학교폭력을 쉬쉬하는 경향이 있는데, 피해자 측은 학교가 학교폭력을 덮으려 자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거나 소집하더라도 원만히 일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 경찰 및 수사기관에 고소하여 형사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직접 가해자와 피해자 집단의 수강명령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가해자들의 행동이 절대 정당할 수 없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실에 동의하나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 또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원만한 가정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부모의 학력이 아주 낮거나 혹은 아주 높은 특이한 점도 있었다.

가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가정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필요해 보였으며, 각 가정의 붕괴가 분명 아이들로 하여금 약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하는데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참 많이 있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올바른 대인관계,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소통의 방법, 갈등상황에서의 행동 등 여러 부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축적해온 지식들을 압축하여 아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가르치고, 단체 생활을 통해 사회에 나가기 전 미리 작은 사회를 연습해 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는 아이들이 이 둘을 균형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균형은 깨어졌다. 대학진학이 성공의 밑판이 되어주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까? 학부모, 선생님, 학교 측 모두 하나같이 유명한 대학진학을 성공적인 사회 입성의 첫 단추쯤으로 여기고,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에서 더 많은 지식들을 채우게 하기 위해 온갖 열심을 쏟는다.

이마저도 이제 학원이 하는 역할로 변질되어 버려 학교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집단 생활을 가르치고 체험하게 하는 역할만 하면 되는데도 이 역시 버거워하는 듯 보인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대한민국의 교육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도 이러한 학교생활에 익숙해져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책상에 앉아서 책만 들여다보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학교와 학원을 모두 마치고 나면 밤 10시가 넘는다.

우리는 아이들이 건강한 또래관계를 연습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막고 이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 수준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만 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 돌이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학교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보다 많은 지식이 아니다. 함께 어우러지는 법, 또래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법, 소통하는 방법, 분노를 포함한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 사회와 집단 속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도와 예절, 그리고 암묵적 합의하에 함께 살아가기로 한 인류가 세운 규율의 중요성, 이 규칙을 위반하였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과 법적 제재에 대해 가르치고 경험해보게 해야 한다.

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잠재 집단 따돌림 가해자와 피해자를 양성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전연 아무런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부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하고 있다. 피해자가 즉각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법령 안내, 초등학교 학교폭력예방강의 등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움직임도 그저 한낱 스쳐갈 작은 도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식의 습득만큼이나 인성과 사회성을 중요시 여기는 풍토가 자리잡지 않는 한 학교도 아이들도 변할 수 없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 안전지대는 사라졌다. 왕따 없는 학교가 희귀해 질 정도로 집단 따돌림현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학교라는 매일같이 꼭 가야만 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에는 자유롭게 벗어날 수도 없는 특수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따돌림. 매년 수많은 채 꽃도 피워보지 못한 아이들이 궁지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임병장과 같은 극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집단 따돌림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고 했던가? 걷잡을 수 없다고 집단 따돌림을 방관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세월호에서 사라져간 아이들을 방치한 선장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보는 카카오톡 haninpost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