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기업시민, 무엇을 할 것인가?”(2) – 코린도 사회공헌재단의 이순형 사무총장

코린도 사회공헌재단의 승범수 이사장

■ 제1부 『길이 없을 때 우리는…』      
■ 제2부 『고통 로용의 길을 닦다』     
■ 제3부 『함께 걷자! INDONESIA』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기업을 할 때 허가, 등록, 설립 등 업무 외에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건 이제 좋은 사업 아이템, 경기의 활황 뿐만 아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기반을 다지기 위해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이에 코린도 사회공헌재단의 이순형 사무총장이 지난 30여 년간의 사회공헌활동 변천사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CSR에 대한 요구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기고해 연속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제2부 『고통 로용의 길을 닦다』  

# 프롤로그 : 땅에 떨어진 루피아의 가치, 땅에 떨어진 삶의 질

외환위기 시절, 달러를 루피아로 바꾸기 위해 환전소 앞에 줄을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환전하고 가는 사람에게 들은 환율과 내가 바꿀 때의 환율이 달랐다. 요동치는 환율 때문에 생긴 일화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루피아의 1달러 당 가치는 3분의 1까지 폭락했다. 그래서 루피아로 월급을 받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곤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생필품과 공산품 값은 두 배 넘게 뛰어올랐고, 그 나마도 그 값이 언제 오를지 몰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재기를 했던 사람도 나는 보았다.

수많은 도산, 대량 해고…

IMF로 인한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불행은 대한민국의 IMF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의 실직과 가계 파산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속출했다.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짊어진 학생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들어서기 전에 도와야 했다.

코린도 장학재단 회의실에서 내려진 결정은 다음과 같았다.

‘인도네시아가 어려울수록 장학재단 같은 기업의 후원이 더욱 절실한 때다. 이런 때야말로 우리 재단이 설립된 취지에 맞게 활동을 개진한다. 좀 더 빨리 장학금 전달을 할 수 있도록 서두르자’

남들은 하던 것도 잠시 주춤할 때, 우리는 새로 시작했다. 이런 때야말로 기업이 나서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코린도 장학재단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교육부와 협력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학재단 산하에 국립 대학교 총장, 교육부 고등교육담당 청장, 메단의 사범대학 총장, 그리고 코린도 장학재단 이사장 4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결성해 장학생 선발 및 장학금 전달에 만전을 기했다.

코린도 그룹의 장학금 전달
코린도 그룹의 장학금 전달

1998년부터 시작된 대학생 장학금 혜택 사업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현재까지 지속된 이 장학 프로그램의 수혜자는 총 727명에 달한다.(표1) 또한 보다 양질의 교육을 지원한“코린도 학사&석사 프로그램”도 있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한국 명문대의 교환학생 지원과 더불어 MBA 과정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1년에서 3년까지 학업기간만큼 학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코린도의 “학사&석사 프로그램”의 수혜자는 총 34명으로 현재까지 280,000 달러의 유학자금을 지원했다.

또 한편, 코린도 장학재단과는 별개로 우리 회사의 각 지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각자가 지역 주민들의 아이를 한 명씩 책임지고 교육비 지원을 하는 자발적인 캠페인도 벌였다.

코린도 장학프로그램(1998년~2018)
코린도 장학프로그램(1998년~2018)

그 캠페인을 우리는 “교육 대부(代父)”라 불렀다. 대학교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직원들도 있었고,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아이들을 돕는 직원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때 저마다 마을의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마음과 또 낙후된 환경에서도 교육의 기회를 잃어선 안 된다는 마음뿐이었다.

우리나라는 폐허가 되어 먹고 살 것이 없는 전쟁 때에도 천막을 치고 공부를 했던 민족이었다. 전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기까지 최단시간이 걸렸던 건,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교육대부’를 실천하던 우리 모두 공감하던 바였다.

문명의 혜택도, 정보의 공유도 적었던 인도네시아 낙후된 지역을 우리가 모두 구제할 순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산기지로 자리 잡았던 지역만큼은 도울 수 있지 않겠나 라는 아주 간단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본다. 웃으며 학교를 다니던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탄탄한 직장에 다니고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람으로 잘 성장했을까, 혹시 그 아이가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러다 문득 고개를 젓는다. 나를, 그리고 우리 코린도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았다. 당시엔 그런 의도로 후원했던 게 아니니까 말이다.

다른 직원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때, 아이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당시 우리들의 모습 같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밀림 속에서 길을 내고, 공장과 숙소를 짓고, 학교를 세우며 마을을 만들며 회사를 성장시켜 나갔던 우리들의 모습 말이다. 우리는 그때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해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지역 계열사들은 현지 주민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자체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들을 시행해왔다. 모두 자생적,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현지 상황에 맞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몇 개의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교육, 건강 및 의료, 환경, 인프라, 일자리 창출의 5가지다. 코린도 계열사업본부의 지역사회공헌 활동다섯 가지 분야로 나뉜 우리의 사회공헌 활동은 실제 단 하나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환경들을 개선해보자’였다. 삶의 질과 직결되는 인프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의료 환경 개선, 더불어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교육 환경 지원과 생물학적인 환경 개선으로 확대해 나갔다.

코린도 그룹 승은호 회장 및 임원의 사회 봉사 활동
코린도 그룹 승은호 회장 및 임원의 파푸아섬 사회 봉사 활동

한마디로 우리 회사의 사회공헌은 첫째도 환경, 둘째도 환경이란 의미다.

그 동안 우리가 해왔던 사회공헌 활동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역 계열사가 더 활발해 보이는 우리만의 이유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2007년, 세계 최초로 CSR을 의무화한 나라다. CSR이란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약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CSR의 핵심 개념은 ‘기업시민, 지속가능성’에 있다. ‘기업 시민’은 기업도 일반 시민과 같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그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다. 일반 시민이 세금을 내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보호를 받는 것처럼 기업도 사회공헌과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나왔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그 이전부터 기업에게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란 요구를 해왔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무려 1994년부터다.

수하르토 정부는 1994‘짐바란 선언’을 통해 인도네시아 빈곤퇴치를 위해 총 96개 재벌에게 수익의 2%를 사회에 기여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그때 인도네시아 현지 및 외국계 기업들은 비영리재단을 서둘러 설립했다. 이후 자선 활동, 지역사회 개발 지원, 환경보호와 같은 CSR 영역의 활동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기업 재단의 CSR활동들은 대체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환경 아래 기업의 지원들은 적재적소에 닿지 못했던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히 교육부문과 지역 계열사 중심의 직접 지원을 고수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사실 일정 금액을 기탁하고 돌아서도 무방했지만, 그 지원이 과연 꼭 필요한 현장에 제대로 도착하는지 끝까지 추적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손길을 내민 그 곳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도 우리와 거의 똑같은 사회규범이 있다. 바로 “고통 로용(Gotong Royong)”, 상호협력이란 뜻이다.

우리의 상부상조, 혹은 품앗이와 비슷한 그 문화는 인도네시아에 사회적 기부와 나눔이 일상화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4년부터 기업에게 책임을 다하라는 선언도, 세계 최초로 CSR을 법제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기업을 하면서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조건적인 자선행위가 수혜자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또한 CSR을 이용해 기업의 이미지 희석에 이용한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이제 또 다른 개념의 기업 시민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코린도가 내년이면 반세기에 접어든다.

그 세월은 기업의 질적, 양적 성장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남의 나라에서 기업을 시작해 흔들림 없이 성장했던 인도네시아의 기업시민이 되기 위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닦아온 고통 로용의 길은 선의에서 시작해 도덕적 의무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선의와 도덕적 의무에 한계가 오기 전, 우리는 지속 가능한 기업시민으로서의 책임을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3부에 계속)

<저작권자 ⓒ한인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 사전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