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자(Toraja), 만델링(Mandheling), 가요 마운틴(Gayo Mountain)
지구촌 커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 온 커피들이다. 국내에도 제법 소개된 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되는 커피라는 사실이다. 브라질, 베트남의 뒤를 잇는 세계 3위 커피 생산대국 인도네시아의 광활한 대지에서 자라난 커피인 것이다.
토라자는 술라웨시섬에서, 만델링과 가요 마운틴은 수마트라섬에서 생산된다. 여기에 자바섬의 자바(Java) 커피도 빼 놓을 수 없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중 하나인 자바의 명칭이 개발자가 즐겨 마시던 자바 커피에서 비롯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커피의 유래는 네덜란드에서 처음 커피나무가 이식된 17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인들은 예멘의 모카항을 거쳐 베니스 상인들에 의해 주로 유통되던 커피 맛에 빠져들고 있었다.
커피의 경제적 가치에 눈독을 들인 유럽 국가들은 발아 능력이 있는 볶지 않은 상태의 커피나무를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됐다. 16세기 초부터 예멘을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마침내 몇 그루의 커피 묘목을 확보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상업적 재배를 목적으로 식민지였던 자바섬의 바타비아(Batavia, 네덜란드 통치 시절의 자카르타 명칭)에 커피를 심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인도네시아 커피 재배는 머지않아 자바섬 곳곳으로 확대됐고, 네덜란드에 엄청난 부를 안겨줬다. 일각에서는 당시 네덜란드 선원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가져가는 장기 항해 과정에서 찬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방법을 고안한 데서 오늘날의 더치커피(Dutch Coffee)가 유래됐다고 전하기도 한다.
적도에 걸쳐진 1만7000여 개 섬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도서 국가 인도네시아는 커피 재배에 적합한 풍부한 강수량, 화산재 지형 등 자연환경과 기후를 자랑한다.
그래서 맛과 향이 뛰어나면서도 개성 있는 커피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1870년대 발생한 커피 녹병(커피나무 잎에 곰팡이가 생기는 전염병)으로 인해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의 커피 농장들이 사실상 황폐화됐다.
이후 아라비카(Arabica) 품종보다 병충해에 강한 로부스타(Robusta) 품종 재배에 주력하면서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로부스타 커피 생산국으로 발돋움한다.
실제 로부스타 품종은 인도네시아 전체 커피 생산량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반면 대체로 낮은 품질의 로부스타 품종이 생산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소량 재배되는 아라비카 품종은 국제적으로도 고급 커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도네시아의 커피 생산량은 약 1090만bag(1bag=60㎏)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 60%가량이 수출되고 나머지는 내수용으로 소비된다. 수마트라섬과 술라웨시섬을 중심으로 자바섬, 발리섬 등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커피나무가 재배된다.
커피의 90% 이상이 소규모 플랜테이션 형태로 생산되는 가운데, 수마트라섬의 루왁 커피(Luwak Coffee)는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특수 환경에서 재배된 커피 중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로부터 우수 등급을 인정 받은 커피)로 꼽힌다.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되는 희소성 덕분에 루왁 커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로 대접 받기 때문이다.
글로벌화 물결 속에 다국적 커피 체인들의 진출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 등지에서는 달군 숯을 연유 커피에 넣어 마시는 인도네시아 고유의 커피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제3의 도시 반둥 중심부에는 3대를 내려오며 90년 가까이 시장통 한쪽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 온 커피 로스팅숍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 밖에 수도 자카르타의 구시가지에는 1830년대 건설돼 네덜란드 총독 관저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보수해 손님을 맞이하는 카페가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존재감을 뽐낸다.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오른다면 질적 세련됨과 양적 풍성함을 두루 갖춘 인도네시아 커피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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