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Globalization)의 후퇴를 누가 원하는가?

불합리 논하기 전 시장의 혁신과 통제 역사를 알아야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Matahari, Debanhams, Ramayana, Lotus 등 주요 대형 오프라인 백화점들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쇄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를 경기침체 여파로 해석하지는 않는 이유는 글로벌 트랜드인 온라인 매장으로의 이동과 부합되기에 큰 이슈로 여기지는 않는 상황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서울 명동 입구 건너편엔 미도파 백화점이란 곳이 있었다. 일제시대 3대 백화점으로 시작하여 해방 후 무역협회, 대농그룹 소유를 거쳐 아주 번창한 백화점이었지만 IMF사태와 온라인 세상변화로 2002년 롯데쇼핑의 인수 후 자취를 감춘 아재들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가족들이 명절 때가 되면 만원버스를 타고 옹기종기 다 같이 모여 백화점을 가던 추억과 시절이 행복하고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지금의 온라인 쇼핑 세상은 과연 불행한 시절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당시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으니 불행한 것이고 국가 전체로도 실업자가 더 늘었다는 비판은 어떠할까? 물론 당시 생계를 책임지던 백화점 매장직원들 중 실업자가 되어 가족이 고통스런 부분은 있었지만, 온라인 플랫폼 개발과 유통라인 혁신으로 시장확대 및 신규 고용창출이 되었으니 나라 전체로는 더 큰 이득이 분명하다.

과학기술의 발전 트랜드와 속도로 보면 세계화(Globalization)는 당연성과 필요성에 대한 의심이 과거에는 거의 없었다. IT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국경의 의미가 별로 없는 세상이 되었으며 편리하고 저렴한 재화와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넘나드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 세계화 시대 안에서도 핵심동력인 자본과 인간, 기술의 이동을 불편해 하는 추억(?)은 있고 더 이상의 글로벌 통합을 원하지 않는 현상이 실제로도 존재한다. 얼마 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로 EU 탈퇴 결정이 그러했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그렇다.

중국 등 신흥강국의 반발, 서구 속에서의 세계화 반대 정치인, 세계화를 선동했던 미국의 상대적 하락을 보면서 혹시나 세계화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무수한 칼럼과 책이 남발한다. 물론 세계화의 불합리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논쟁을 하기 전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고립과 보호주의 정책이 좋은 결과였던 적이 과연 있었는가에 대한 비판은 다들 회피만 한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비관론자들의 공통점은 그저 ‘아름다운 추억(?)’들 뿐이다. <이성적 낙관주의>를 펴낸 과학저술가 매트 리들리에 의하면 과거 사람들이 훨씬 순수하고 착했을 뿐 아니라 그 과거가 더 살기 좋았던 것처럼 얘기하는 건 인류의 착각이라고 했다.

착각의 대표적 사례가 1960년대 인구폭발과 세계기근, 1970년대 자원고갈, 1980년대 산성비, 1990년대 AIDS창궐 등이다. 70년대 석유 고갈론도 지금의 셰일가스 채굴이 개발된 세상에선 허황된 거짓이 됐다.

실제로 인류 역사는 시장의 혁신과 끈임 없는 경쟁의 결과물만 존재한다. 원시상태를 논하기 전에 지난 200년만을 보아도 30년마다 반복된 것은 시장의 혁신뿐이다. 1800년대 섬유에 의한 산업혁명, 1830년 철도, 1890년 전기, 1920년 자동차, 1950년 항공기, 1980년 컴퓨터, 2010년대 인터넷 등의 산업개발을 시장의 혁신이 아닌 시장의 통제나 제제로 가능했다는 해석이 과연 가능할까?

시장이란 것이 문제가 전혀 없으니 세계화나 자유무역에 반대하지 말고 그저 따르기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비판이나 비관을 하기 전에 ‘잘못된 믿음’ 이나 ‘거짓이론’에 대해 충분한 고민과 냉철한 판단을 거친 지식(知識)이 필요하단 얘기다. 혹시나 지금이 뭔가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에 초점을 두지 않고 통제나 제제를 통해서 이상적 유토피아가 가능하단 잘못된 믿음으로 나온 결과는 언제든 ‘전지전능한 정부’ 나 ‘시장의 통제’ 뿐 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하이에크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저서는 <치명적 자만>이다. 그는 이런 치명적 자만에 빠진 결과가 결국 극소수를 위해 수십억 인류의 미래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지식인들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