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역주행인가 숨고르기인가

지난해 연말 탄핵 정국으로 인한 촛불 시위가 광화문을 달구고 있을 무렵, 한류와 관련하여 놀랍고도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1997년 이래 한류의 견인차이자 기지(基地) 역할을 하고 있던 지상파방송의 콘텐츠 수출 추세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이다. 아니 정지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퇴보세를 보였다. 한류의 간판격인 K드라마에 적신호가 울렸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26일 방송통신위원회가 2015년 방송산업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조사 내역을 보면 2015년 지상파와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유료방송채널)의 수출총액은 전년대비 3.8% 감소한 3억199만 달러를 기록했다. K드라마를 앞세운 방송분야 수출총액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19.9% 증가하면서 한류를 견인해 왔다. 그런데 2014년에는 전년대비 8.6% 증가세로 주춤하더니 2015년에 들어 아예 감소세를 기록한 것이다. 지상파의 경우 2년 전인 2013년의 1억914만 달러보다 낮은 1억643만 달러다. 말하자면 역주행이다.

그동안 방송계는 한류의 수출 권역을 다변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중동에서는 터키, 이란 등의 <대장금> 열풍이 있었고, 중남미는 쿠바에서 <내조의 여왕>, 아르헨티나에서 <시크릿 가든>, 브라질에서 <뽀로로> 등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방송 한류 콘텐츠의 주 시장은 여전히 아시아권이다. 2015년 역시 일본(35.3%)과 중국(26%)의 비중이 높은 가운데 95.5%가 아시아 국가다. 문제는 그 액면이다. 이번 조사에 나타난 수치를 보면 일본 및 중국 수출액이 전년대비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2013년을 정점으로 이후 한류 수출의 하강세가 두드러진다. 바로 한 해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2012년 8월에 MB의 독도 방문과 연이은 일왕 사과 요구 발언이 있었다.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돌출 행동과, 이를 빌미로 한 일본 내 혐한 정서와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이어지면서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당면 현안은 당연히 사드 배치다. 앞으로 양국이 이 문제에서 해법을 못 찾는다면 중국 측의 ‘보이지 않는’ 한한령(限韓令)이 주는 파장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돌이켜 보면 <사랑이 뭐길래>에서 시작해 <겨울연가>로 불이 붙고 <대장금>에서 만개를 했던 K 드라마…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별에서 온 그대>로 소구력을 재발견하고, <태양의 후예>로 진면목을 되찾는 줄 알았던 한류가 이제 천장을 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에 한국의 민낯을 내보인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격의 실추, 주 칠레 한국 외교관의 미성년자 성추행 사건 등 악재가 중첩되어 한류의 붕괴가 우려되는 판국이다. 잘못 하면 그야말로 한방에 훅 간다. 급기야 ‘K드라마에서 K를 떼자’는 제언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방송 콘텐츠는 인접 및 파생 효과가 큰 한류의 전위이자 본진이다. 잘 나갈 때는 바빠서(?) 제 모습을 제대로 못 볼 수 있다. 이제 한류는 조정 국면을 맞았다. 이 기회에 전열을 정비할 때다. 한때 천편일률적인 기승전멜로 구도와 출생의 비밀 등 작위적인 우연성의 남발 등으로 연구자는 물론 팬들에게까지 조롱을 받았던 K드라마의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신화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덧붙여 최근 주목받는 포맷 비즈니스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플랫폼의 다변화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방송 콘텐츠는 방송사 간의 거래인 B2B를 거쳐 B2C로 유통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OTT로 플랫폼이 바뀌면서 O2O와 모바일로 수용자가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한류 콘텐츠의 효율적인 접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또한 콘텐츠의 퀄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재원 대책은 방송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요컨대 이 기회에 방송 한류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제 숨을 고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