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법정자료 공개….아베정부 ‘군법회의 기록’ 부정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성노예 사례고발(1)

Jugun Ianfu

최근 일본 정부는 과거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문제를 공식 사과했던 1993년 고노담화를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아베정부 내에 비밀 팀을 꾸려서 고노담화가 인정했던 위안부 강제 연행이 사실인지를 따져보는 비밀 팀을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주변국 강한 항의를 받고 있다. 이에 한인포스트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사례를 연재한다.
<일본군 성노예 특별취재반>

한인포스트는 2013년 815 특집기사로 2차대전 때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 여성과 네덜란드 여성과 인도네시아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서 성노예 위안부로 삼은 법정 기록을 공개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이런 명명백백한 증거마저 부정하고 나섰다.

2013년 815특집기사에서 본지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지난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구 자카르타 지명)에서 종군 위안부와 관련된 일본군에 대해 군사재판이 열렸다.

2차 대전 때인 1944년,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위안소로 연행해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이 재판에서 사형 1명을 포함해 일본군 장교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본군이 종군 위안부 강제 연행에 직접 관련된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이 재판 기록이 공개된 것. 그런데 아베 내각은 지난 2013년 10월 이 기록조차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고 결정했다고 sbs가 보도했다.

아카미네 일본 중의원 의원실 담당자는 “바타비아 임시군법회의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고 관방장관에게 문의했다. 일본 정부는 바타비아 문서에 대해서는 각의 결정에 있는 내용이 전부라며 아베 내각은 이 군법회의 기록의 존재조차 사실상 부인해 왔다.

한인포스트 보도내용은 다음과 같다.
2차대전 이후 열린 전범재판에서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여성을 군대위안부 성노예로 동원해 강제매춘을 시킨 죄가 인정돼 일본인 장교들이 처형된 사실을 증명하는 공식문서가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개관준비위원회는 2007년 1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94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전범재판 과정을 담은 네덜란드 바타비아 법정사료의 원문을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당시 일본군 소좌 등 9명에 대해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여성들에게 강제매춘을 시킨 혐의를 인정해 사형 등 유죄판결을 내린 사실이 적혀 있다. 문서는 베를린에 유학중인 한 일본인이 네덜란드 왕립문서보관소에서 복사본을 구해 최근 우리나라에 전달했다.

인도네시아 전범재판은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열렸던 수많은 전쟁범죄 재판 가운데 강제매춘을 심판한 유일한 경우로 알려졌으나 그동안 국내에는 그 원문이 공개되지 않았다.
한인포스트는 1948년 바타비아 재판 사본을 입수하여 일부를 아래와 같이 인용 게재한다.

A2_gggNo. 72/1947 판결문 231
바타비아 임시 군사법정은 다음의  피고인들에 대해 법무관이 청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Ⅰ. XXXXXXXXXX(이름생략)45세, 일본 히로시마 출생(1902/10/1일생), 일본군 대령

1944년 3~4월, 피고가 스마랑(Semarang)의 병참장교(heitan-officer)로 있을 때, 자신의 휘하에 있던 민간인 및 병사들에게 총 35명의 여성들-이들 여성들은 당시 일본 점령당국에 의해 스마랑의 스마랑 오스트(Semarang-Oost), 그당간(Gedangan) 및 할마헤이라(Halmaheira)등의 수용소 및 암바라와(Ambarawa)의 제 4수용소 및 제 6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고 스마랑에 있던 쇼코클럽(Shokoclub), 세마랑클럽(Semarang-club), 히노무라(Hinomura) 및 후타다소(Futadaso) 등의 위안소에 감금되어 있었음-을 강제로 매춘 및 강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당시 피고는 이러한 전쟁범죄행위가 행해지고 있거나 혹은 행해 질 것이라는 사실을 적어도 알고 있었고 혹은 당연히(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어야 했다.

Ⅱ.  XXXXXXXXXX39세, 일본 오사카, 히가시구, 이마바시 출생(1908/4/11일생), 일본군 군속대령.1944년 2월

29일경, 적어도 1944년 2월 저녁, 피고는 위안소 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스마랑의 쇼코클럽에서 자신과 혼외 성관계를 가질 것을 강요하여 XXXX를 강간 함

Ⅲ. XXXXXXXXXX38세, 일본 아이치현, 카수가이시, 오아자 카수가이 출생(1910/1/14일생), 일본군 소령

1944년 2월 26일경, 피고가 스마랑의 병참장교부관(deputy  heitan-officer)으로 있을 때, 이 지역의 케나리란(kenarielaan)가(街)에 있던 건물에서 총  35의 여성들을 위안소 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다른 4곳의 장소로 이송하여 그 곳에서 매춘부로서 일할 것을 명령했다. 피고는 1944년 2월 ~ 4월 경, 스마랑의 병참장교부관(deputy  heitan-officer)으로 있을 때, 자신의 휘하에 있던 민간인 및 병사들에게 언급된 여성들을 ‘쇼코클럽(Shokeclub), 세마랑클럽(Semarang-club), 히노마루(Hinomaru) 및 후타바소(Futaba-So)등의 위안소에 감금하여 강제로 매춘 및 강간하도록 허용하였다.

당시 피고는 이러한 전쟁범죄행위가 행해지고 있거나 혹은 행해 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혹은 당연히(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어야 했다…….이하 생략….

따라서 다음과 같은 형을 선고한다:피고 Ⅲ, XXXX,- 사형피고 Ⅳ, XXXX,- 실형 10년피고 V, XXXX, – 실형 7년피고 Ⅵ, XXXX,- 실형 16년…..이하 생략…

이 판결은 1948년 2월 14일, 주재판사인 중령 Mr. J. La Riviere, 소령 Mr, L.F. de Groot,  대위 Mr, A.J. A. Theys,중위이며 서기관인 Mr.A. Uyt den Bogaard이 배석한 자리에서 내려졌고, 1948년 3월 15일 요약 및 확인되었다.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서기, 주재판사: 서명: A. Uyt den Bogaard 서명; J.La Riviere1948년 3월 22일인 오늘, 바타비아 행정청 임시행정관인 본인 M.A.F. ZWAGER는 위 판결의  집행을 허가한다.
<일본군성노예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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