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와서는 이렇게 물었다. “이봐 소크라테스, 내가 디오게네스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는데 혹시 자네도 아나?”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바로 말을 자르고 질문을 한다. 유명한 3단 논법 일화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친구에게 그 정보가 사실인지를 묻는다. 친구가 잘 모르겠다고 말하자 바로 두 번째 질문으로 그 소식이 좋은 내용인지 묻는다. 친구가 그 역시 잘 모르겠다 하자, 세 번째는 “그럼, 디오게네스 얘기가 나에게 유용한 정보라 생각되나?”라고 묻는다.
결론은 당연 진실성, 선함, 유용성이 결여된 정보라면 소크라테스는 그 해당 정보나 소식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했다는 지혜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흘러 2,500년이나 지난 지금은 소크라테스와 같이 진실되고, 선하고, 유용한 정보를 선별할 수가 없다. 정확히는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도 없고, SNS까지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정보를 그저 멍 때리며(?) 쫓아가는 것도 절대불가다.
최근의 인도네시아는 Ahok 주지사의 신성모독 발언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유입현상에 대한 반발이 엉키고 뒤섞여서 “중국인 불법노동자가 1천만 명”이라는 반중(反中) 루머 확산으로 까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누가 봐도 종교적이고 정치적 반대 세력에 의한 가짜뉴스 문제에 정부는 전담기관을 설치해 감시하고 처벌, 폐쇄 등 강경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SNS 등 정보의 홍수가 가져온 시대적 가짜뉴스 사건의 죄목은 ‘거짓여론 조장’으로 보이지만 내막은 인간의 ‘사악함’의 표출이다. 가끔은 필자도 이럴 경우엔 맹자의 性善說이 아닌 순자의 性惡說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과학기술의 발전과 발명이든, 그리고 법규나 제도도 좋은 취지와 목적으로 개발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태반이니 말이다.
SNS가 빠르고 대량의 정보 순기능에서 사악함을 띠게 변질된 원인은 언론이 정치성향으로 변질되어 가는 경제적 원인과 동일하면서 또 다르다. 언론의 수요자는 구독자이고 공급자는 사주, 편집국, 광고주, 기자 등 이다. 수요자(구독자) 측에서는 정보가 진실되고, 선하고, 유용하다면 수요증대(구독증대)가 일어나고 여기까지는 경제적 순기능이다.
그러나 어느 일정시기가 지나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의해 수요가 정체되고, 만일 공급자가 이 상황에서 이윤 극대화를 더 원하는 상황이라면 구독자 수를 더 늘려서 광고수익 증대를 원할 것이다. 이 경우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남과 다른 뉴스’와 ‘특종’이 필요하나 이 역시 한계에 달한다. 결국 ‘그저 자극적이고 더 더러운 뉴스’에 빠지는 순간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언론사 소유규제나 기자 윤리강령이 필요한 연유다.
언론사가 이윤 극대화가 목적이라면 SNS 공급자는 무엇이 목적일까? 물질적 대가가 결여된 상태에서 SNS 수요자나 공급자 쌍방이 원하는 좋은 정보가 생산 유통되는 순기능이 있겠지만 수요자든 공급자든 어느 쪽에서든 정치적 영향력 같은 목적성(?) 극대화를 원한다면 선(善)은 바로 변질된다. 문제가 생기면 물질적 대가는 없다며 ‘표현의 자유’나 ‘인권’이라는 면죄부를 내밀면 된다.
결국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한 인간의 투쟁과 노력의 역사는 책임과 의무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 닳게 한다. 구글의 회사 모토는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다. 방대한 개인정보를 보유한 구글이 맘만 달리 먹는다면 실로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스스로 책임을 부가한다.
언론과 SNS가 사악해 지지 않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고작 댓글과 비판 실명제로 대응을 하고 있으나 본질은 지식으로 무장된 ‘논쟁과 토론’이다. 역사학자, 고고학자로 저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이언 모리스 (Ian Morris) 교수는 신작 ‘가치관의 탄생(Forages, Farmers, and Fossil Fuels)’에서 본인의 논리를 펼쳐가면서 4명 논평자들의 반박글도 포함시켜 책을 저술했다. 마지막 본인의 반박과 맺음말은 가히 압권이다.
“반론의 글은 마쳤지만, 내가 틀렸다는 그들의 말이 나를 납득시키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시켰다는 자신은 없다….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집어 볼 기회를 주었고…. 덕분에 앞으로 쓰고 싶은 책도 더 많아졌다. 학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진실성, 선함, 유용함을 갖추면서 동시에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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