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일본 점령기는 1942년 초, 일본군이 누산타라 군도의 전략적 요충지들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중 일본군이 최초로 점령한 도시는 북칼리만탄의 작은 도시 타라칸(Tarakan)으로, 당시 주요 석유 생산지 중 하나였다.
1942년 1월 11일, 일본군은 약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타라칸 동부 해안에 상륙했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천연자원, 특히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타라칸은 700개 이상의 유정, 정유 시설, 전략적 비행장을 갖추고 있어 일본군의 첫 번째 목표로 선정되었다.

당시 타라칸에는 약 1,300명 규모의 네덜란드령 동인도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나, 일본군의 우세한 병력과 화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1942년 1월 12일, 네덜란드군은 항복했고 타라칸은 공식적으로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타라칸 점령은 인도네시아 역사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일본군은 타라칸을 발판 삼아 발릭파판, 사마린다, 폰티아낙 등 칼리만탄의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마침내 네덜란드 식민 통치의 중심지였던 자와섬까지 공격했다.
일본의 점령은 인도네시아 사회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인도네시아의 천연자원을 가혹하게 착취했으며, 이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고통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의 점령은 기존의 네덜란드 식민 통치 구조와 사회에 균열을 일으켰고, 이는 결국 인도네시아 독립 투쟁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타라칸은 북칼리만탄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과거 정유 시설 부지, 일본군 방어 벙커와 같은 역사 유적지는 80여 년 전 발생했던 중대한 사건들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타라칸의 일본 점령 역사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운 거대한 투쟁의 서사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며,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도네시아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Tya Pramadania 법무전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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