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대전성모 등 무더기 사직…20일엔 근무중단 예고
경찰청장 “구속수사 검토”…경실련 “‘담합’ 공정위 고발”
수술 절반 줄어들며 환자들 ‘발만 동동’…”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예고했던 대로 19일 수도권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사직서를 무더기로 제출하고, 일부는 현장을 떠나 의료 현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명령을 내리면서 ‘법대로’ 원칙을 강조했고, 경찰청장은 주동자에 대한 구속 수사를 검토하겠다며 엄정 수사 방침을 밝혔다.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고발 방침을 밝히면서, 의대증원 찬성 목소리를 모을 ‘촛불집회’를 게획하고 있다.
◇ 전국서 전공의 수천명 집단사직…서울서만 1천명 이상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뿐만 아니라 전국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의 대규모 집단사직이 현실화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예고했던 대로 이날 빅5 병원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잇따르면서 1천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대전협은 빅5 전공의 대표와 논의한 결과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한 뒤,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전협은 사직서를 제출한 뒤 20일 정오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 계획이다.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료개혁 방침에 반발하며 이날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만큼, 20일 회의에서는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서울병원은 전체 전공의 525명 중 30∼40% 상당인 160여명이, 서울성모병원은 290명 중 190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578명 중 상당수가 사직 의사를 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협에서 예고했던 날보다 하루 앞선 이날부터 상당수의 전공의가 근무를 중단한 세브란스병원은 전체 612명 중 일부를 제외한 600여명이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은 과별로 제출한 사직서 등을 집계하고 있어 아직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숫자에 대해서는 병원마다 집계에 차이가 있으나, 서울에서만 최소 1천명은 훌쩍 넘길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이날 지방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이 이어졌다.
경기도에서는 서울대병원의 분원인 분당서울대병원 소속 전공의 110여명, 아주대병원 전공의 13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천에서는 인하대병원이 100명, 가천대길병원 71명, 인천성모병원 60명 등이 사직 의사를 표했다.
전북대병원에서도 전공의 189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고, 원광대병원 전공의 126명은 한차례 사직이 반려됐으나 다시 제출하고 근무를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
전남대병원에서 224명, 조선대병원에서는 10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강원대병원 64명,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97명, 강릉아산병원 19명 등 강원지역에서도 전공의들의 사직이 이어졌다.
경남에서는 양산부산대병원 전공의 138명, 진주경상국립대병원 전공의 121명,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전공의 71명, 창원국립경상대병원 21명 등 4개 병원 전공의 351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울산에서는 울산대병원 25명이, 대구에서는 영남대병원에서 65명이 사직서를 내면서 집단행동에 가세했다.
대전성모병원 47명, 대전을지대병원 42명 등 대전 지역에서도 전공의들이 사직을 표했다.
제주도에서는 제주대병원 전공의 73명, 한라병원 소속 전공의 13명 중 상당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빅5 병원을 비롯해 전국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를 모두 합치면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정부 “증원폭 축소 없다”…의협 집행부에 ‘면허정지’ 강공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대해 “증원폭 축소는 없다”며 단호한 모습이다. 의협 집행부에 대해서는 면허정지라는 ‘초강수’를 꺼내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김택우 위원장과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 등 집행부 2명에 의사 면허정지 행정처분에 관한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했다. 이들은 의사들의 ‘집단행동 교사금지 명령’을 위반한 혐의로 행정처분 대상이 됐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나온 첫 사례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현장을 지켜달라고 당부하면서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에 대해서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있다며 ‘충격적’, ‘참담함’ 등의 표현을 쓰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이날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이전에 내렸던 명령이 필수의료에 대해 병원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이번 명령은 모든 전공의에게 진료 현장을 떠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더 나은 여건에서 의사로서의 꿈을 키우고 과중한 근로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육과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개선하겠다”면서 “환자를 등지지 말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현장 점검에서 진료 업무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업무개시(복귀)명령을 내리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의사면허 정지 등 조치하고 고발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정부의 조치를 ‘의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하며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처벌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고 밝힌 의협에 대해서는 “국민의 생명을 협박하는 반인도적 발언은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한 것인지 참으로 충격적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복지부는 “협상을 통해 숫자를 줄일 문제는 아니다”며 증원 폭과 관련한 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정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이날부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하며 환자 피해 사례를 상담해주고 법률구조공단과 연계해 소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수사기관에 고발됐을 때 정해진 절차 내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할 것”이라며 “명백한 법 위반이 있고 출석에 불응하겠다는 확실한 의사가 확인되는 개별 의료인에 대해선 체포영장을, 전체 사안을 주동하는 이들에 대해선 검찰과 협의를 거쳐 구속 수사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정부의 강경 발언에 “의사들을 겁박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우리 의사들은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를 하고 있다”며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하는 정부의 압박에 더 이상 희망이 없어 의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다만 복지부와 의료계 사이 대화의 여지도 보인다. 양측은 20일 밤 방송되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의대증원과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의대 증원 찬성 측 인사는 유정민 복지부 의료현안추진단 전략팀장과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가, 반대 측 인사는 이동욱 경기도 의사협회장과 정재훈 가천의대 길병원(예방의학교실) 교수가 각각 나선다.
전공의 등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을 결집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집단 진료중단 행위를 ‘담합’으로 보고 22일께 집단 진료 거부에 동참하는 전공의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규탄하기 위한 범국민행동인 ‘국민 촛불행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조는 “의대 증원을 무산시키려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중단을 막고 진료를 정상화하기 위한 범국민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의료현장은 벌써 ‘대란’…암수술 늦어지고 출산 연기
의료 현장의 혼란은 벌써 시작됐다. 일부 병원에서는 특히 전공의들이 일찌감치 현장을 떠나면서 암수술, 출산, 디스크수술 등 긴급한 수술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고,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의 전공의들이 이날부터 진료를 중단하면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뿐만 아니라 전체 과의 수술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루 200∼220건 수술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10%가량인 20건의 수술이 연기됐다. 이 병원은 20일이면 약 70건의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오전 현재 전체 전공의 525명 중 30∼40% 정도가 사직서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병원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응급·위중한 수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전면 파업으로 인해 응급·중증도에 따라 수술과 입원 스케줄이 조정될 수 있다고 환자들에게 안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환자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광주 전남대병원을 찾은 환자 박모(65) 씨는 전대병원 측이 20일 잡혀있는 수술을 취소했다고 한다.
박씨는 “내일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지난해 7월부터 예약해서 수술을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대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쌍둥이를 출산할 예정이었으나, 수술을 하루 앞두고 연기를 통보받았다는 환자의 사연도 전해졌다.
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마저 전공의 집단사직이 가시화하면서 수술 일정이 조정되는 모양새다.
병원들은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임상강사, 펠로 등으로 불리는 ‘전임의’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할 경우 감당하지 못할 상황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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