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랑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

암바라와 성노예위안소

2014년, 9월, 30일, 화요일

● 70년전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성노예 위안부 현장 그대로 남아
● 고 정서운 할머니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 첫 증언…스마랑에 끌려와
● 위안부 피해자 현지인이 더 많아…현지인들과 연합해서 세워져야
● 유성천 스마랑 한인회장, 스마랑 위안부 소녀상 세울 것

중부자와 스마랑 암바라와에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성노예 위안부 현장을 돌아본 한인기업인들은 처참한 현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도네시아 기독실업인회(이하 cbmc 회장 이수일 대표) 20여 회원들은 지난 27일(토) 중부자와 스마랑 암바라와에 있는 탱크여단을 찾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수용소 현장을 방문했다.

20여 한인기업인들은 먼저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 현장을 찾았다. 연합군 포로수용소 뒤편 담벼락에 붙어 있는 성노예 위안부 현장은 그야말로 73년전 전쟁의 참사보다도 더 흉물스러운 참혹의 현장이었다. 약 50여 채의 쓰러져 가는 콘크리트 가옥들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간직한 체 70여년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날 한상재 대표는 안내에서 “70여 년전 당시 여기는 물이 빠져 나가지 않은 습지대에 작은방에 콘크리트 침대와 책상 한 개에서 밤낮으로 일본군을 상대한 한국여인들이 살고 있던 자리”라고 말했다.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성노예 위안부 현장은 인도네시아 군당국이 보존지역으로 지정해 70년동안 방치되어있어 폐허상태였다.

현장방문에 참가한 기업인들은 “73년전 전쟁의 참사보다도 더 흉물스러운 참혹의 현장으로 이곳에서 한인여성들이 일본군을 상대하면서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자료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화란군이 사용하던 스마랑 군대를 점령하고 동남아에서 잡아온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운영했다.

이에 일본군은 2000여 조선 한인들을 데려와 일본군속병으로 배치하여 연합군 포로를 지키는 일을 시켰다.

한상재 대표는 “종전이후 수많은 한인들은 연합군 포로들의 증언에 따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돈벌어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나간 조선 한인들은 이렇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처분 당했다”고 말했다.

일본군은 여기에 성노예 위안부를 마련하고 한국여성, 인도네시아 여성, 화란여성을 잡아와 성 노리개감으로 삼았다.

“나는 일본군위안부였다”는 첫 증언을 한 고 정서운 할머니가 끌러온 곳이 여기 스마랑 암바라와 위안부다.
종전이후 스마랑 암바라와 일본군 사령관은 바타비야 법정에서 스마랑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증거로 총살당했다고 한인포스트는 지난 2012년 8월 보도했다.

성노예 위안부 자리는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포로수용소 뒷담 밑에 그대로 흉물로 남아있었다. 일본군 성노예 위안부들은 줄지어진 50여채 방에서 지금의 폐허보다도 못한 끔찍한 참혹의 현장에서 또 하나의 민간인 성노예 감옥생활을 했다.

10여 조선의 여인들은 여기서 무참하게 짓밟혔고 이제 여기는 세평 남짓의 방에 콘크리트 침상과 책상 하나가 다 썩어 문들어져 가고 있었다. 벽에 남겨둔 낙서들은 지붕에 내리는 빗물로 알 수 없는 오물로 덥혀져가고 있었다.

일본군속의 조선한인들은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고 항일 운동하다가 적발되었고, 일부는 탈출해 일본군과 격렬하게 싸우다 자결한 곳이 스마랑 암바라와이다.

당시 독립운동에 나선 전남광주에 95세로 생존해 계신 이상문 열사는 한인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자결한 동지들은 옥수수 밭에서 끌어내 묻어주었다”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스마랑에 위안부소녀상을 세우자”

스마랑 암바라와 연합군 포로수용소와 성노예 위안부 현장을 돌아본 한인기업인들은 “스마랑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라는 말에 놀라면서 “그래 그거야”라고 공감했다.

성노예 피해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현지인에게도 더 크다.

이에 스마랑 한인들은 스마랑 위안부 소녀상은 스마랑 현지인들과 연합해서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게 지하에 계신 정서운 할머니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절반의 수가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인도네시아에 묻힌 그분들에게 드려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유성천 스마랑 한인회장도 “스마랑에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인도네시아 동포들이 아픈 역사라고 버릴 수 없잖아요? 이를 더욱 되새김질 해 후배들에게 자식들에게 떳떳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전하면서 “스마랑에 위안부소녀상을 세우자”고 밝혔다. <스마랑 특별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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