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어쩌다 이토록 무책임한 나라 됐는가

사   설

모든 게 엉망이다. 밝은 낮, 비교적 잔잔한 바다에서 수많은 승객과 승무원이 초대형 참사로 스러져갔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이번 참사는 발생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정상이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등 승객·승무원 475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를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16일 오전 침몰한 전남 진도 앞바다에 ‘위대한 성취의 나라 대한민국’은 없었다.

기본이 허약한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였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슬로건 ‘더불어 함께하는 안전한 공동체’가 더없이 민망하다.

이번 사고는 292명을 희생시킨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최악의 해난(海難)으로 짚인다.

안전한 나라는커녕 안전 그 자체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7월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지난 2월 경주 리조트 붕괴 등 ‘안전불감증 인재(人災)’가 속출했음에도 달라진 게 없다.

세월호 규모와 승선 가능 인원은 6825t, 921명으로 서해훼리호의 110t, 207명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고 기상 조건 또한 훨씬 양호했음에도 인명 피해는 엇비슷할 상황이다.

21년의 간극은 그대로 해상 안전 그 통한(痛恨)의 역주행 시기로 다시 기록해야 할 것이다. 10대 고교생들의 아깝디 아까운 희생은 그 역주행의 참담한 대가가 아닐 수 없다.

이들 의문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천재(天災)’는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비상 상황에서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의 마지막 1인까지 안전을 지켜야 하는 책임 그 자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것도 다른 승객들이 구조되기에 앞서 탈출했다니 위아래가 기울어 뒤집힌 여객선 안의 학생·시민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했단 말인가.

전남 소방본부와 목포 해양경찰청에 사고 신고가 접수된 직후 탈출한 승무원도 있다니, 하다못해 선내 방송으로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는 대신 ‘함께 탈출하라’고 했던들 피해 규모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여객선 침수 이후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선내 방송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렸고 그로부터도 완전 침몰까지 또 한 시간이 더 걸렸다니, 그 2 시간은 미스터리가 아니라 범죄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승객으로서는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그 두어 시간을 일부 승무원의 ‘직무유기’로 허비하고 만 정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빈자리’를 시민과 학생들이 대신했는데 살아남은 60대 그 선장은 치료실 침상에서 바닷물에 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니, 분노에 갈음해 인간적 연민이 앞선다. 저러는 것 아니다, 단연코 아니다.

‘못믿을 정부, 오합지졸(烏合之卒) 당국’은 이번에도 어김없다. 대형 여객선으로부터 사고 신고가 들어왔다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적어도 기본을 갖춘 정부이고 당국이라면 그 즉각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 입체 전략을 세우고 실천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국의 느긋한 최초 판단이 이내 치명적인 실책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위 아래가 뒤집힌 여객선 밑에서 학생들이 비명 속에 스러지는데 상공에서는 한두 대 헬기로 한 명씩 구조하는 장면은 되돌아볼수록 기도 안찬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하했어야 했다.

게다가 구조한 인원이 몇이나 되는지 그 계산부터 제대로 못하고 계수 맞추기에 바빴다. ‘대책없는 대책본부’라는 비유 아닌 비아냥만이 당국 몫인 것만도 아니다.

관련 당국끼리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면피 모습까지 또 버젓이 연출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고, 사후 수습능력 또한 원천적으로 의문이다.

이런 판에 정치인들이 사고 해역 인근을 다투듯 찾은 것도 ‘면피성 단견’으로 비친다.

이렇듯 세월호 사고는 공·사(公私) 각 부문에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지 못한 무책임이 얽히고설켜 키운 참극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신과 책임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인연(因緣) 네트워크’가 그 자리에 똬리 틀어 정부는 정부대로, 해운사는 해운사대로 직무를 외면하고 거스른 것이다.

공사 각 영역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고, 그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상급자가 자신의 그 지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을 ‘처세의 모델’쯤으로 그르쳐온 것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악습이다.오늘 이 점을 더욱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선, 정부부터 인책 백서(引責白書)를 쓰는 자세로 사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말을 재구성해야 한다. 직접 책임은 물론 간접 책임까지 엄정히 따져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백년 세월이 흘러도 세월호를 잊지 말도록 각인해야 한다.
<문화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