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 노조 연맹, 자체 법안 드래프트 의회 전달 “90% 노동자 대표해 대안 제시…
사회적 대화로 국정 혼란 방지” 의회 부의장 “노동계 제안 적극 수렴… 위헌 소지 최소화할 것”
[자카르타 = 한인포스트] 인도네시아 노동계가 정부와 의회를 향해 신규 노동법안(RUU Ketenagakerjaan) 심의 과정에 진정성을 가지고 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과거 광범위한 사회적 갈등과 헌법재판소(MK)의 위헌 판결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던 ‘일자리 창출법(Omnibus Law on Job Creation)’ 제정 당시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경고다.
특히 이번에는 대규모 거리 투쟁 대신 의회와의 직접적인 제도적 대화를 선택함으로써,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입법 절차를 정착시키려는 노동계의 전략적 전환이 주목된다.
◇ “현장 상황 긴박”… 18개 연맹 뭉쳐 대안 법안 제시
인도네시아 내 18개 주요 노동조합 연맹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 노동투쟁 대연합’은 지난 3일 자카르타 세나얀 국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규 노동법안에 대한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는 심의를 요구했다. 이날 회견은 헌법재판소가 정한 법안 심의 시한인 10월 31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열린 것으로, 노동계의 위기감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전인도네시아노동조합총연맹(KSPSI) 안디 가니 네나(Andi Gani Nena) 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현재 노동 현장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입법부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안디 위원장은 “이번에 뜻을 모은 18개 노동연맹과 157개 전국 산별연맹은 인도네시아 전체 노동력의 90%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조직”이라며 “이들 조직이 공동으로 입법 참고용 자체 노동법안 드래프트를 마련했다는 점은 노동계가 단순한 반대를 넘어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과거 옴니버스 법안 강행 처리 당시 목격했던 전국적인 격렬한 저항과 장기 연쇄 시위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는다”며 “의회와 정부가 노동계의 목소리를 법안 내용에 실질적으로 반영한다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인 법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요식 행위 아닌 실질적 대화”… 거리 투쟁 대신 의회 행보 선택
노동계가 강경 투쟁보다는 의회와의 직접 대화를 우선시한 배경에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행과 사회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맞물려 있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일자리 창출법에 대해 ‘형식적 위헌’ 판결을 내리며 정부와 의회에 법안 재심의 및 보완 입법을 명령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남은 시한 내에 법적 효력을 갖춘 대체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가 경제와 투자 환경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국인도네시아노동조합총연맹(KSBSI) 엘리 로시타 실라반(Elly Rosita Silaban) 위원장은 “이번 노동조합의 의회 방문과 법안 제안이 단순한 요식 행위나 정치적 위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엘리 위원장은 “물론 거리 투쟁 역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자 소통의 한 방식이지만, 현재의 국정 혼란을 막고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우리는 의회가 노동계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전통적인 대중 동원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정책 역량과 협상력을 바탕으로 입법 과정에 개입하려는 질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노동계는 법률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 법안의 위헌 소지를 해소하면서도 노동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구체적인 조항들을 자체 드래프트에 담았다.
◇ 의회 “노사 합의점 선제 도출”… 위헌 소송 리스크 차단 방침
노동계의 이러한 전향적인 움직임에 대해 인도네시아 의회(DPR)도 긍정적인 화답을 내놓았다. 이날 노동자 연합은 추춘 아흐마드 샴수리잘(Cucun Ahmad Syamsurijal) 의회 부의장 및 노동법안 실무위원회(Panja) 관계자들에게 자체 작성한 법안 드래프트를 공식 전달했다.
추춘 부의장은 전달식 직후 “노동계가 제시한 방대한 자료와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여 입법 과정에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본격적인 본회의 심의에 앞서 노동계와 경영계 간의 합의점을 선제적으로 도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노사 모두에게 공정하고 균형 잡힌 법안을 마련함으로써, 향후 또다시 위헌 소송이 제기되는 소모적 상황을 방지하겠다는 것이 의회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추춘 부의장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쟁점 사안이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각계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반영하겠다”며 “학술 연구 결과와 현장의 의견을 법안 수립 과정에 폭넓게 아우르는 다각적인 소통 채널을 가동할 것”을 약속했다.
이는 과거 옴니버스법 처리 과정에서 야당과 노동계의 참여를 배제한 채 여당 주도로 속전속결 처리했던 관행으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 남아있는 과제: 신뢰 회복과 입법 속도전의 조화
전문가들은 이번 노동계와 의회의 만남이 인도네시아 입법 문화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자카르타 소재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첫 번째 주요 입법 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신규 노동법안 심의 과정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며 “노동계가 제시한 대안이 얼마나 반영되느냐가 향후 노사정 사회적 대화 체제의 존립 여부를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분석했다.
다만, 10월 말까지라는 물리적 시한이 남아있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방대한 분량의 법안을 단기간 내에 심의하고 노사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지적이다. 자칫 형식적인 의견 수렴에 그칠 경우, 노동계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여 다시 거리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 노동계가 ‘진정성 있는 심의’를 촉구하며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절차적 정당성과 실질적 내용을 모두 갖춘 법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제 공은 의회와 정부로 넘어갔다. 노동계의 손을 잡고 사회적 합의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번 사회적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정치권의 태도와 결단에 달려 있다. 인도네시아 사회 전체가 숨죽여 이번 입법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Tya Pramadania 법무기자. Kamilia Octaviani 기자. Fajar 편집 기자, AI경영센터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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