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카르타=한인포스트] 인도네시아 정부가 수 세기 동안 국민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350년 식민 지배’라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새로운 국가 역사서(Buku Sejarah Indonesia Terbaru)를 편찬했다. 이는 독립 80주년을 앞두고 식민주의적 관점을 탈피하여,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인도네시아 민족의 주체적인 역동성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파들리 존 인도네시아 문화부 장관은 지난 14일(현지 시간) 자카르타 교육문화부 청사에서 열린 공식 출간 행사에서 신간《인도네시아 역사: 세계화 흐름 속 민족주의 역동(History of Indonesia: Dynamics of Nationalism in the Global Flow; Sejarah Indonesia: Dinamika Kebangsaan dalam Arus Global)》을 공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문화부 산하 역사국 주도로 인도네시아 전역의 34개 대학 및 11개 연구 기관 소속 역사학자 123명이 집필에 참여한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특히 이날 행사는 파들리 존 장관이 문화부 장관령(제206/M/2025호)을 통해 새롭게 제정한 ‘역사 기념일’에 맞춰 진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12월 14일은 1957년 욕야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인도네시아 역사 세미나 개최일로, 인도네시아 역사학계의 자주적 역사 서술이 시작된 기념비적인 날로 꼽힌다. 행사에는 헤티파 샤이푸디안 하원 제10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역사학계와 대학 대표,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 “350년 식민 지배는 정치적 구호… 역사적 사실과 달라”
이번 신간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은 소위 ‘350년 식민 지배설’에 대한 학문적 수정이다. 파들리 장관은 이날 축사를 통해 “우리는 오랫동안 ‘350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관념 속에 살아왔다. 이는 과거 독립 투쟁 시기 민족의 단결과 국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였을지 모르나, 역사적 사실로서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인도네시아의 모든 군도(群島)가 3세기 반 동안 동시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식민 지배를 겪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군사적 점령과 경제적 영향, 정치적 지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350년이라는 숫자에 매몰된 서사는 비판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식민 유산이며, 이번 역사서에는 이러한 학계의 수정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었다”고 설명했다.
◇ 8천 페이지에 담긴 10대(代)의 역사… “인도네시아가 역사의 주체”
이번에 출간된 역사서는 총 7,958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선사 시대부터 군도 왕국 시대, 식민 시대, 민족 운동기, 독립 전쟁, 신질서(New Order) 시기, 개혁 시대(Reformasi), 그리고 2024년 민주주의 공고화 시기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 역사의 전 과정을 10개의 주요 권에 담았으며, 각종 사실 자료와 색인을 포함한 별책 1권으로 구성되었다.
집필진은 수산토 주흐디, 싱기 트리 술리스티요노, 자잣 부르하누딘 등 저명한 교수 3인이 총괄 편집을 맡아 학문적 엄정성을 기했다. 레스투 구나완 문화 및 전통 보호 총국장은 “방법론의 동기화, 내용 편집, 공개 토론, 참고 문헌 검증 등 모든 과정이 엄격한 학문적 규칙에 따라 진행되었다”며 “이는 정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우리의 약속”이라고 밝혔다.
책의 서사는 철저히 ‘인도네시아 중심주의’를 표방한다. 고대 인류의 발견과 문화의 확산, 세계 문명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변화해 온 군도 사회의 모습을 추적하며, 인도네시아를 피지배 객체가 아닌 역사의 능동적 주체로 묘사했다.
◇ 논란과 기대 공존… “유일한 정사가 아닌 민주적 담론의 장”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정부 출범과 함께 재설립된 역사국이 주도한 이번 프로젝트는 2025년 1월 발표 당시부터 학계와 대중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역사 서술의 정치적 동기와 방법론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파들리 장관은 “역사 기록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며 끊임없는 담론에 열려 있어야 한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 책은 유일무이한 정사(正史)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의도되었다”면서 “완전한 역사를 기록하려면 100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 책은 국가 여정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책이 ‘대항 역사(Counter-history)’가 아닌 국가의 역사적 관점을 풍성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파들리 장관 역시 출간 시점에야 책의 완성본을 받아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직 전체 내용을 정독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며, 향후 상세한 검토를 거쳐 논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들리 장관은 끝으로 “이번 역사서 출간이 1945년 헌법 제32조 1항에 명시된 국가 문화를 증진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며, “이 책이 국가의 집단적 기억을 보존하고 정체성을 강화하며, 인도네시아를 과거부터 이어져 온 세계적 흐름의 당당한 일원으로 이해하는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될 이 책이 향후 동남아시아 역사학계와 대중의 역사 인식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Tya Pramadania 법무전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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