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IS 11 / 박가영
아침 등굣길에 친구가 플라스틱 병을 한 봉지 가득 들고 쓰레기장 앞 저울에 올려두는 모습을 보았다. “이거 모아두면 돈이 된대.” 친구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는 대신 가치를 부여하는 이 시스템이 바로 ‘쓰레기 은행(Bank Sampah)’다. 이 시스템을 통해 주민들은 쓰레기를 돈으로 바꿔 간단히 저축하고, 동시에 환경도 깨끗하게 지킨다.
쓰레기 은행은 2008년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주민 주도 재활용 프로젝트다. 급증하는 생활 폐기물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자, 각 가정에서는 플라스틱 PET 병, 캔, 유리병, 종이 등을 종류별로 분리해 쓰레기 은행 센터로 가져간다.
센터에서는 저울로 무게를 재고 품목별 단가를 적용해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 이렇게 쌓인 포인트는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생활용품, 공과금 바우처, 장학금 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운영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각 마을(RT/RW) 또는 동 단위로 센터가 설치되며, 지방 정부나 NGO에서 초기 장비와 교육을 지원한다. 주민들이 가져온 재활용품은 분류함에 담아 종류별로 구분한 뒤, 저울로 무게를 측정해 기록부에 입력한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Bank Sampah Bantul에 따르면 일반 플라스틱은 약 Rp. 50/kg, 알루미늄 캔은 Rp. 1400~1600/kg 정도로 환산된다고 한다. 이렇게 적립된 포인트는 각 가정의 저축통장처럼 기록된다.
자카르타 주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까지 200여 개 센터가 운영되며 연간 5,000톤 이상의 재활용품을 모아 80억 루피아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북부 자카르타의 한 센터는 2023년에 플라스틱 120톤, 캔 15톤, 종이 80톤을 수거해 주민들에게 총 70억 루피아를 적립해 주었다.
동부 자바 Bojonegoro와 Malang 지역에서는 농촌 마을 중심으로 2022년부터 도입된 이후, 수익을 우물 수리나 학교 화장실 보수 등 공공사업에 재투자하며 자립 모델을 완성 중이다.
발리 Ubud과 Seminyak에서는 관광업체와 협력해 호텔·레스토랑 쓰레기를 수거하여, 관광객의 일회용 쓰레기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
환경적으로도 쓰레기 은행은 큰 의미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이 세계 2위 수준이지만, 가정에서 발생하는 재활용품을 적절히 분류하여 재활용업체로 연결함으로써 해양으로 흘러갈 수 있는 쓰레기 양을 줄였다. 쓰레기 매립량 감소는 곧 온실가스 배출 억제 효과로 이어져 기후 변화 대응에도 작은 보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첫째, 주민들의 분리수거 인식이 부족해 센터에 혼합 쓰레기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둘째, 재활용 원자재 가격이 수시로 변동되어 주민 적립금이 불안정해지면서 참여 의욕이 떨어질 수 있다. 셋째, 섬 지역이나 농촌 오지에는 센터 설치를 위한 공간과 운영 인력이 부족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
정부 보조금이나 NGO 지원이 줄어들면 자생력 확보도 어려워진다. 폐기물 한 점 한 점이 저축으로 기록될 때, 우리도 환경을 지키며 작은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늘 모은 쓰레기가 내일의 깨끗한 땅과 바다를 위한 씨앗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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