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日상대 소송 항소심 승소…”韓법원 재판권 인정”

위안부' 피해자들이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23일 항소심 재판부가 일본 정부에 청구 금액인 2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이유로 '각하' 판단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소송을 낸 이용수 할머니는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다.

‘재판권 면제’로 각하한 1심 판결 취소…”1인당 2억원 청구 전부 인정”
이용수 할머니 만세 외치며 눈물…”하늘에 계신 할머니들 모시고 감사”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독립투쟁지와 위안부 처소…화장실 쓰레기장로 변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일본 정부에 청구 금액인 2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이유로 ‘각하’ 판단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소송을 낸 이용수 할머니는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다.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 부장판사)는 23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소송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인데, 이같이 판단한 1심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상 피고 일본 정부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며 “당시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돼 합당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법, 위안부 2차 소송 '각하' 취소…"청구 금액 전부 인정"
서울고법, 위안부 2차 소송 ‘각하’ 취소…”청구 금액 전부 인정” (서울=연합뉴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2023.11.23 

 

또 “이 사건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 명의 일본 군인들과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인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의 행위는 대한민국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피해자별 위자료는 원고들이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각 2억원은 초과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이용수 할머니는 선고가 끝나고 법정을 나서면서 두 팔 벌려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앞서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1명은 2016년 12월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21년 4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주권 국가인 일본에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된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반면 같은해 1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1차 소송에서는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가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차 소송의 재판부는 “일본의 불법 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재판 관할권을 인정했으며 일본 정부가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며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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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포스트 스마랑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 보도자료
한인포스트 스마랑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 보도자료

태평양 전쟁 때 조선 청년들이 스마랑에서 살라띠가 방향으로 48km에 위치한 암바라와성에 연합 포로 감시원과 위안부로 끌려와 처참한 생활을 했지만 한국 정부의 관심밖이다.

사산자바문화연구원 이태복 원장에 따르면 조선 포로 감시원들 중 이억관 열사 일행은 “고려독립청년당”이라는 항일 운동조직을 결성 “민영학 손양섭 노병한” 열사가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켜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이와 함께 끌려온 20여 조선 위안부들이 성노예를 당한 곳이다.

이곳 스마랑(암바라와)에는 해방 후 1946년 1월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1000명의 “재자바 조선인 민회(한인회)”가 모인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지부 역사가 있는 곳이다.

암바라와 일본군 성노예위안소가 관광객 화장실 쓰이고 있다. 힌인포스트
암바라와 일본군 성노예위안소가 관광객 화장실 쓰이고 있다. 힌인포스트

암바라와 대한독립열사 역사는 2008년 보훈처에서 조사했지만 창고(보훈처 기록만)에 처박혀 있었고 위안부 역사는 기록마저도 없었다. 2014년 암바라와의 유일한 생존 위안부 고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을 근거로 한인포스트 정선 대표에 의해 YTN에 극적으로 보도됐지만 잊혀 가고 있다.

조선의 꽃다운 소녀들이 중부자와 암바라와로 끌려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위안부 처소는 화장실로, 그 곳에서 멀지않은 대한독립 열사들의 자결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주차장과 논으로, 또한 고려청년독립당을 만들고 혈서를 나누었던 곳은 창고로 방치되고 있어 충격이 되고 있다. (동포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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