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원이 21일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현행법상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커플이 합법의 영역에서 보호받을 길이 열렸다는 평가와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판결이 너무 앞서나갔다는 평가도 있다.
법원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사회보장제도 영역에서 차별하는 건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명확히 한 만큼 동성 커플의 권리 보호를 위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남은 데다, 건강보험제도에 한정한 이번 판결을 전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판결로 일반화할 수 없는 만큼 의미를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 “동성 커플 법적 보호 출발점…전향적 판결”
서울고법 행정1-3부(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는 이날 성 소수자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피부양자 자격을 최초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했다. 대신 ‘동성 결합 상대방’이라는 표현을 쓰며 이들을 성적 지향에 따라 사회보장제도에서 차별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동성 커플도 제도권 내에서 보호받을 길이 열렸다며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말 환영할 만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동성 파트너의 법적 보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동성 커플도 사실혼에 준하는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동성 커플은 우리 사회에 뚜렷하게 존재하고, 서로 돌봄의 관계에서 의존적인 동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여부를 떠나, 두 사람이 서로 부양의 책임을 진다면 최소한의 복지 수준에서는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했던 한 변호사도 “상당히 전향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에서 동성 결혼을 공인해줄 수는 없어도 동성이라는 이유로 국민이 응당 누리는 사회복지 혜택에서 제외하면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선언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이어 “이 판결대로라면 향후 건강보험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로 인정된 다양한 영역에서 동성 파트너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은 “최소한 국민연금법과 같은 공법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이 판결이 확대 적용될 여지가 커 보인다”고 내다봤다.
◇ “건강보험에 국한된 판결…확대 해석 무리”
이번 판결을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는 신중론도 나왔다.
건강보험제도의 경우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원의 해석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오킴스의 윤승환 변호사는 “법령상 명시적인 규정이 없음에도 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배우자’ 집단을 피부양자로 인정해왔으면서, 동성 결합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건 자의적인 차별이라는 논리 구성이 가능했던 사례”라고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국민건강보험법이 다른 사회보장 법령과 다른 구조여서 나올 수 있는 판결”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건강보험 외 다른 사회보장 법령(국민연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자로 피부양자를 명시하기 때문에 동성 커플이 보호받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번 판결을 근거로 법원이 동성결혼을 인정했다는 해석을 하는 것은 매우 무리”라고 지적했다.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판결이 너무 앞서나갔다는 평가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법상의 가족 개념은 아직 바뀌지 않았고, 동성결혼을 어떤 식으로 인정할 것이냐는 사회적 갈등이 굉장히 심한 문제로 관련 입법도 미뤄지고 있다”며 “사회적 변화를 마지막으로 정리·조정하는 사법부가 너무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판결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5년, 10년 후 관련 입법이 되고 나서 판결이 내려진다면 몰라도, 현재 단계에서는 판결이 앞서나간 것으로 보인다”며 “여러 쟁점이 있어서 대법원에서도 인정될지, 다른 법적 지위 인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고법도 이날 판결이 동성혼, 사실혼, 동성배우자 등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c) 연합뉴스 전재 협약
<저작권자 ⓒ한인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 사전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