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세상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

강지후 SPHKV 12

성냥팔이 소녀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추운 겨울밤, 소녀 안나는 성냥을 팔기 위해 집에서 쫓겨나 온다. 누구도 성냥을 사지 않자, 추위에 떨던 안나는 성냥을 하나씩 켜다, 세 번째 성냥엔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게 되고,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렸을 때 이 동화책을 읽었을 땐 ‘아, 안나는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갔구나,’ 하고 여느 디즈니 이야기와 같이 행복하게 마무리된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 이 짧은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의 감상은 조금 달랐다. 안데르센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는 사람으로서 희망적인 마무리를 지어낸 걸 수도 있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초점은 마무리가 아닌 안나가 놓여있는 상황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은 온데간데없어 발은 붉어져 있고, 사람들은 내내 안나에게 관심도 주지 않는다. 성냥을 다 팔지 못한 걸 아버지가 알게 되면 맞을 것이 분명하기에 안나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이러한 안나의 비극적인 상황은 되려 작가가 다른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만 같아, 이 작품과 더불어 시대 배경을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11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여의고 고된 나날을 보냈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안데르센은 어머니에 의해 어린 나이부터 담배공장에 다니다가 재단사 아래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모두 성에 차지 않은 안데르센은 돈을 벌기 위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그러나 여기서 적은 돈을 받으며 참가했던 성가대에는 변성기가 오자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고, 발레단에서마저 퇴짜를 맞게 된다.

이후 덴마크 왕립극장의 감독, 조나스 콜린을 만나게 되어 교육을 지원받으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성냥팔이 소녀 안나와 다소 닮았다. 안데르센은 어렸을 때 마주했던 가난의 비극을 성인이 되어, ‘성냥팔이 소녀’를 통해 표현해낸 것일 수도 있다.

왜 성냥일까?
물론, 추운 날 안나가 사용할 수 있고, 하나씩 켤 때마다 잃어가는 안나의 의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냥이 딱 알맞기에 문학적 요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끝이 붉은 성냥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백린(白燐, white phosphorus)으로 만든 성냥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백린은 발화점이 낮고, 독성 연기를 내뿜어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실제로 19세기 성냥공장 근로자들은 백린 중독 증세를 보였으며, 이에 따라 뼈가 기형으로 변하거나 괴사하는 일이 허다했다.

당시에는 성냥이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성냥 공장들이 빛을 보고 있을 때였는데, 성냥 공장들은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어린 여성들을 잔뜩 고용하고, 낮은 급여를 지급했다. 많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가 일었던 것은 공장들의 대처였는데, 인(燐, phosphorus) 장기간 노출로 인해 phossy jaw(인으로 인한 턱뼈 기형) 전조 증상으로 치통을 앓는 여성 근로자들에게 이를 뽑으라고 지시하였고, 이를 어기는 이들은 공장에서 해고되었다.

즉, 성냥팔이 소녀 안나는 공장에서 해고되어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성냥을 길거리에서 파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후 1888년, 런던의 ‘브라이언트 메이’라는 성냥 공장의 여성 근로자들이 시작한 파업이 런던 전체의 성냥공장 근로자들의 파업을 일었으며, 이 움직임은 현재 1888년 성냥개비 파업(The Matchgirls’ Strike)으로 불리고 있다.

이 파업은 성냥공장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근무 환경 또한 크게 발전시켰으며, 파업 약 3년 이후, 성냥개비 파업의 첫 번째 불씨였던 브라이언트 메이는 백린이 아닌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적린 성냥, 또는 안전성냥으로 제조를 시작했다.

성냥팔이 소녀는 1846년도 연말에 배경아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고려, 안나가 팔던 성냥은 ‘백린 성냥’이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녀의 사망 원인 또한 ‘급성 인중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추위에 떨며 켠 성냥으로 인한 급성 인중독으로 사망한 비극적인 안나 삶의 마무리를 웃고 있는 안나의 표정으로써 희망적으로 묘사한 것을 생각하면 ‘성냥개비 소녀’는 결국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눈으로 본 ‘성냥개비 소녀’ 이야기는 이보다도 사회 고발적인 요소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 ‘성냥개비 소녀’는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며, 같은 날 저녁 추위에 못 이겨 결국 하늘로 떠난 가냘픈 소녀는 우리가 아는 안나 한 명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