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대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수출액을 늘리는 동시에 일본과 맺는 사상 첫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받고 있다.
전 세계 인구·교역·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블록에서 관세가 인하되면 한국 수출 증가에 탄력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공급망 불안정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RCEP를 체결한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 아세안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22억6000만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30%에 달한다. 이 지역 간 무역 규모도 연간 5조4000억달러로 전 세계 교역의 29%를 차지한다.
RCEP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관세율을 큰 폭으로 낮추게 된다. 상품 무역에서 한·아세안은 최대 94.5%, 한일은 83%, 한국과 중국·호주·뉴질랜드 간은 91%까지 관세철폐율을 적용한다. 관세가 철폐돼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면 최근 가중된 공급망 혼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RCEP 발효로 한국의 역내 수출이 2%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향후 20년간 RCEP 발효 영향으로 실질GDP가 0.14%포인트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RCEP가 국내 경제에 어느 정도 파급효과를 미칠지는 일본·아세안과의 교역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과는 기존에 FTA를 체결하지 않은 만큼 일부 품목에서 큰 폭으로 관세가 인하되고, 아세안 지역도 주력 수출 품목의 관세 철폐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일본 수출 때 합성스테이플섬유(기존 관세율 6.6%)와 폴리에스터직물(5.7%) 관세를 바로 0%로 인하받는다. 소비재에서는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청주, 맥주 등 일본 주류에 15~30%씩 매겨지던 관세가 15~20년에 걸쳐 0%까지 인하된다.
동시에 일본으로 수출하는 소주와 막걸리에 대한 일본 측 관세도 20년에 걸쳐 철폐되는 만큼 주류 시장에서 한일 기업의 본격적인 경쟁이 예상된다. 다만 자동차, 기계 등 민감품목은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에서는 자동차, 가전 등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가 낮아진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은 안전벨트, 에어백, 휠 등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인도네시아는 자동차 부품에 대해 최대 40% 관세를 매겼지만 이를 없앴다.
아세안 지역에서 봉강·형강 등에 대해서는 기존 5%였던 관세율이 0%로 낮아지고, 철강관(20%), 도금 강판(10%) 등에 대해서도 관세가 철폐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최대 30%에 달하던 냉장고와 세탁기, 최대 25%에 달하던 에어컨에 대한 관세도 철폐될 예정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휘청이는 무역수지가 대아세안 수출을 디딤돌 삼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베트남 등 아세안 지역은 일본 업체가 70% 이상 관련 시장을 장악하는 등 일본이 강세”라며 “RCEP를 통해 아세안 시장을 공략할 뿐만 아니라 아세안을 제3시장에 수출하기 위한 생산 거점으로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RCEP 발효에 따라 발생할 무역 마찰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난 1일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1월부터 일본을 포함한 10개국에서 먼저 발효된 RCEP가 이날 한국에서도 발효됐다”며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 철폐는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이 일본산 식품에 적용해온 수입 규제를 철폐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올해 정부는 또 다른 광역 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추진한다. 정부는 CPTPP 가입 신청서를 오는 4월 제출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가 CPTPP에도 가입하게 되면 RCEP에 포함되지 않은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를 상대로도 광역 FTA를 맺게 된다. RCEP와 CPTPP에 동시에 가입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8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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