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WTO 개도국 지위 포기하나…

– 농업부문, 관세·보조금 감축 때 피해 불가피
– 트럼프, 이달 23일 이후부터 개도국 대우 일방적 중단 통보

연합뉴스 등 한국 여러 매체들은 13일 보도를 통해,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농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 경제적 발전도가 높은 국가가 WTO 내 개도국의 지위를 이용해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WTO가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압박하며, WTO가 90일 내(10월 23일까지)에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26일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하며 제시한 기준은 네 가지인데, 첫째 OECD 회원국, 둘째 G20 회원국, 셋째 1인당 국민소득 1만2,056 달러 이상 국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점유하는 국가 등이다. 네 가지 기준 중 한 가지라도 해당하는 국가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33개국이다.

그러나 네 가지 모든 기준을 갖춘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미국은 네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나라가 오는 23일까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해당 국가의 개도국 특혜를 중단하는 제재를 이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신중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의 개도국 지위 조정에 대한 발언 이후 대만, 브라질,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이미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으며 오는 23일까지 여러 국가들이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할 것으로 보여, 한국이 개도국 지위 유지를 주장할 경우 미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20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대외경제장관회의에 개도국 지위 문제를 상정하며 “향후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농업이 받고 있는 기존 혜택에는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다음 달(10월) 회의에서 결정하려고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주장할 협상이 사실상 없고 WTO 회원국 일원으로서 확보한 권리는 개도국 지위와 상관없이 계속 가져가게 된다”며 “개도국을 유지했을 때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 맞서는 것이 바람직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투데이는 13일 외부 전문가들의 관측을 전하며,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한다고 해도 그간 한국 농업이 누리던 관세·보조금 혜택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개도국 지위 강제 중단을 선언한다고 해도, 차기 농업 협상까지는 기존 관세·보조금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싱가포르 등 한국보다 앞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나라들이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인도 등의 갈등으로 차기 농업 협상은 타결이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선진국 자격으로 차기 농업 협상에 참여한다고 해도 쌀 등 주요 농산물은 ‘민감 품목’으로 지정해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다. 일본 역시 선진국 자격으로 WTO에 가입하며 쌀 등을 민감 품목으로 지정했다. 다만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비한 농업 체길 개선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핵심은 ‘공익형 직불제’ 도입이다.

농산물 가격과 상관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공익형 직불제는 차기 농업 협상에서도 규모를 제약하지 않는 ‘허용 보조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가격에 연동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행 직불금 체계는 차기 농업 협상이 타결되면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와 함께 수급 조절 제도 개선과 농촌 개발 활성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2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한국농축산연합회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농업현실을 무시한 개도국 지위포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개도국 지위포기에 방점을 찍은 정부를 비판했다.

농축산연합회는 “그간 우대를 받던 관세와 국내 보조가 축소되면 국내 농업의 위기가 심화될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국농민회총연맹·가톨릭농민회 등 5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농민의길’도 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WTO 개도국 지위유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이어 노상농성을 시작했다.

WTO Tab이들은 “개도국 지위 포기는 농업 포기와 다름없다”며 “식량자급률은 최저, 도·농간 소득격차는 최대로 벌어져 있는 현실에서 방패막이인 개도국 지위까지 포기하면 농업은 회생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협 농정통상위원회 조합장들은 7일 성명을 내고 정부에 “농업 부문에서 WTO 개도국 지위를 미리 포기하면 안 된다”고 요구하며 “우리나라 농업은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WTO 차기 무역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남도도 한국 농업 부문이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결정해달라고 국회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에 건의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도국 졸업에 따른 가격 리스크를 완충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식량 안보에 필수적인 쌀에 대한 적절한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가격변동 대응 직불제를 도입하고 공익형 직불제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개도국 지위 졸업을 선언하더라도 ‘식량 안보에 필수적인 소수 품목’에 대해서는 예외조치를 한다는 식의 단서를 붙일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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