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식민지배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 ‘막스 하벨라르’
소설 ‘막스 하벨라르’ 한글완역본이 첫 출판되어 자카르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막스 하벨라르’는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 하던 시대에 총독부의 실정과 토호들의 수탈을 비판한 소설로, 네덜란드 최고 문학작품으로 꼽힌다.
‘막스 하벨라르’는 세 명의 화자가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액자 구성의 소설로, 네덜란드 식민정부의 관리로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한 에두아르트 다우어스 데커르(필명 물따뚤리)가 원작을 쓰고, 한국인 인도네시아 전문가 세 명이 팀을 꾸려 2년 넘게 공을 들여 번역했으며, 도서출판 ‘시와진실’에서 출간했다.
이 책에는 인도네시아의 사회, 정치, 경제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 소설 속 대화에 녹아 있고, 번역자의 설명도 친절해서 인도네시아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부담이 없다. 또 번역서임에도 문장이 매끄러워서 술술 읽힌다.
소설 ‘막스 하벨라르’ 한국어 완역본 출판 기념 겸 북콘서트 열려
소설 ‘막스 하벨라르’ 한국어 완역본 출판 기념 겸 북콘서트가 10일 자카르타 시내 한국문화원에서 번역자와 한인동포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출판회에는 번역자 양승윤 교수, 배동선 작가, 사공경 원장, 편집자 전영랑 시와진실 편집장과 더불어 김종민 총영사, 박재한 한인회장 등 여러 내빈들과 반뜬 르박 소재 물따뚤리박물관의 우바이딜라 대표와 인도네시아 지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의 압둘 바시드 대표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한국문화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회 및 87학번 동기회, 한인니문화연구원, 인문창작클럽이 후원한 이 행사엔 한국일보, 한인뉴스, 데일리인도네시아, 자카르타경제신문, 한인포스트 등 한글매체들은 물론 현지 매체 마잘라 히스토리아에서도 취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일락 국악연주팀의 퓨전국악공연으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의학박사 강조웅 교수와 이강현 인문창작클럽 회장의 축사, 번역팀 각각의 소감과 참석자들의 여러 질문에 답변한 북토크, 반뜬 전통무용팀 공연 등으로 진행되었다.
소설 ‘막스 하벨라르’의 줄거리
이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인 커피중개상 드로흐스또뻘은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를 다녀온 어릴 적 친구에게서 한보따리의 원고를 받고, 인턴사원인 쉬떼른과 함께 원고를 정리한다. 쉬떼른은 이 원고의 자료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식민정부 관리인 막스 하벨라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
막스 하벨라르는 르박 지역 부지사로 인도네시아인 태수와 식민정부가 주민들을 수탈하고 학대하는 현실과 싸우며, 이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사이쟈와 아딘다의 슬픈 이야기를 해준다.
마지막에 물따뚤리는 드로흐스또뻘, 쉬떼른, 막스 하벨라르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가 만든 인물이라며, 이 책에 쓴 사실들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양승윤 교수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책이 되길 바래”
이 책의 기획과 번역을 총괄한 양승윤 한국외국어대학교 양승윤 명예교수는 ‘평생 쌓아 온 인도네시아 연구 역량을 전부 쏟아 부었다”라며 “인도네시아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책이 되길 바란다”라고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말했다.
초벌번역을 담당한 배동선(56) 작가는 “2016년 말 세 명이 자카르타 한 카페에서 의기투합한 뒤, 제가 세 개의 판본을 구해 완성한 초고 1,400장에 양 교수님이 800장을 추가했다”고 소개했다.
에필로그를 쓴 사공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은 “한국 고 1 사회 교과서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도 반신반의했는데 관련 박물관을 직접 찾아내는 등 현장을 답사하고 연구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현재 자카르타와 르박에 있는 물따뚤리의 흔적들을 찾아 소개했다.
편집자인 전영랑 도서출판 시와진실 편집장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면 독자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심정으로 양 교수를 괴롭혔다”라고 말했다. 그의 노력 덕에 ‘막스 하벨라르’는 인도네시아를 처음 접하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됐다.
세계사의 물줄기를 (두 번) 바꾼 고발문학
‘막스 하벨라르’에는 세계사의 물줄기를 (두 번) 바꾼 고발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책이 160년 전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직후에는 당시 식민지를 경영하던 네덜란드와 여러 유럽국가들을 각성시켜서 식민정책을 완화하게 했고 식민지 젊은이들을 일깨워서 독립운동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다.
이어 100년 후에는 물따뚤리의 노력은 ‘공정무역’으로 부활한다. 네덜란드인 신부가 멕시코 농민들이 재배한 원두를 중개상에게 헐값에 넘기고 고리채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우시리(Uciri)라는 커피협동조합을 만들어 ‘막스하벨라르’라는 상표를 붙인다. 막스하벨라르 커피는 다른 나라의 커피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중간단계의 유통마진을 줄이고, 농민에게 일정한 수익을 보장하는 거래 방식이다.
한일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
일본 패망, 한국 광복절,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즈음해, 이 책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인 스스로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식민정책을 수정했으며, 2005년에는 베르나르트 보트 네덜란드 외무장관이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인도네시아 독립 60주년 축하연설을 하고, 과거의 실수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를 대신해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식민시대를 대하는 네덜란드와 일본의 자세를 비교하게 한다.
자카르타 꼬따 지역에 있는 Bank Mandiri 박물관, Bank Indonesia 박물관, 멘뗑 지역에 있는 100년넘은 네덜란드 예술관ㅡ 레스토랑 뚜구 꾼스크링 내 물따뚤리방 그리고 좀 더 멀게는 소설의 배경인 반뜬주 르박군 랑까스비뚱의 물따뚤리 박물관과 동상, 관사, 군청을 방문해서 그 시절의 향수를 느껴보는 것도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데일리인도네시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