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산망 먹통 1주일에 복구율 10%대 그쳐… “어떻게 이런 일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의 전산실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이 무더기로 마비된 가운데 28일 서울 중구의 한 지하철역 무인민원 발급기에 운영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5.9.28

심장부 국정자원 화재에 ‘올스톱’…리튬배터리 불길 확산하며 피해 키워
복구작업 본격화에도 정상화까지 최소 1달…경찰, 4명 입건 화재원인 수사 속도

초유의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가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지난 26일 국가 전산망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대전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647개 정부 행정서비스와 내부 업무망 등 전산 시스템이 모두 정지했다.

전산실 내 리튬배터리에서 시작된 화재는 22시간 만에 가까스로 진화됐으나,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전산망이 멈추면서 민원 현장에 ‘수기(手記)’가 다시 등장하는 등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들은 멈춘 업무 전산망을 들여다보며 연일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더 큰 일은 국가 전산망을 복구하고, 정상화하는데 최소 한 달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불이 난 전산실에 있던 96개 시스템은 모두 타버려, 대구 클라우드 존에서 새롭게 이전 복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나마 나머지 551개 시스템을 되살리는 데 복구력을 집중하고 있으나, 작업은 하루하루 더디게 이어지고 있다. 복구했더라도 시스템이 다시 불안정해지거나, 아예 백업 데이터가 없어 무용지물이 된 경우도 나오고 있다.

◇ 전산실 리튬배터리서 불…피해 예방하려다 ‘진짜 불’

대전 국정자원 5층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지난 26일 오후 8시 16분께다.

현장 작업자들은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났다”고 119에 신고했다.

당시 전산실에서는 촘촘하게 수납된 58V 리튬이온배터리 384개를 지하로 옮기기 위한 사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유발한 2022년 경기 성남 SK C&C 화재를 계기로 국정자원은 화재 위험이 큰 배터리와 주요 정보가 담긴 서버 분리를 순차적으로 추진했다.

앞서 한차례 배터리를 지하로 내린 뒤 이날 두 번째 이전에 앞서 배터리 전원을 내리고 케이블을 끊는 작업을 하던 중 배터리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는 게 국정자원의 설명이다.

국정자원 관계자는 “배터리 전원을 내린 뒤 약 40분 뒤에 불꽃이 튀었다”고 전했다.

고개 숙인 윤호중 장관
고개 숙인 윤호중 장관

  • (세종=연합뉴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2025.9.29

공교롭게도 화재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하던 중 진짜 불이 났고, 그 여파로 국가 전산시스템 647개가 멈춰 섰다.

담당 공무원과 방재실 직원, 감리자, 작업자 등 10여명이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 가운데 작업자 1명이 팔과 안면부에 1도 화상을 입었다.

소방당국은 289명과 장비 67대를 동원해 진화에 나섰으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배터리 화재를 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량의 물을 뿌리거나 배터리를 수조에 담그는 것이지만 서버 손실 우려 때문에 물을 적극적으로 뿌릴 수 없었다.

전산실에 할로겐 소화기가 있어 작동시켰으나, 배터리 화재에는 효과가 없었다.

내부 온도는 160도에 달해 내부 진입도 쉽지 않았다.

창문이 열리지 않고, 배터리와 서버가 촘촘히 쌓여있는 전산실 구조도 소방 활동을 어렵게 했다.

화재에 취약한 배터리와 국가 전산망 주요 정보를 담은 서버의 간격은 약 60㎝에 불과했다. 서버와 서버 사이의 간격은 1.2m였다.

일부 진화가 됐다가도 열폭주(배터리가 손상돼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으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온도가 최대 섭씨 1천도까지 오르는 현상) 현상에 다시 불이 붙기도 했다.

소방당국이 배터리와 케이블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불꽃이 발생해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진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불이 시작한 쪽에서 반대편까지 연소가 확대돼 배터리 384개와 서버가 모두 탔다.

소방당국은 이튿날인 27일 오전 3시 20분께 5층 창문을 깨 내부 연기를 빼냈고, 10시간 만인 6시 30분께 초진했다.

불을 모두 끄는 데까지는 12시간이 더 걸렸다.

소방당국은 22시간 만인 오후 6시께 완진을 선언했고, 오후 9시 36분께 배터리 384개를 모두 반출해 소화수조안에 넣으면서 진화를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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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에 붙어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안내문

화장장에 붙어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안내문

  • (수원=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망 마비 후 첫 평일인 29일 전국 화장시설 예약 서비스인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접속이 막혀 유족과 장례식장 직원들은 화장을 예약하기 위해 화장장에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29일 경기도 수원시 연화장에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2025.9.29

◇ 잿더미 속 복구 본격화…더딘 속도에 첫 주 복구율 10%대 그쳐

만 하루 가까이 화재에 노출된 주요 전산시스템은 잿더미가 됐다. 화재의 진원지인 5층 7-1 전산실 내 시스템 96개는 전소됐다.

1등급 업무로 분류된 통합보훈(국가보훈부), 국민신문고(권익위),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안전디딤돌(행안부)과 노사누리(고용노동부) 시스템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국정자원은 불에 탄 시스템 외에 화재 열기 등으로부터 서버 등 장비를 보존하고자 선제적으로 전원을 차단했다. 이렇게 작동이 중단된 시스템이 551개다.

전산망 장애가 사회재난으로 규정된 뒤로 처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한 정부는 본격적인 시스템 복구작업에 들어갔다.

민관 합쳐 500명이 넘는 복구인력을 투입해 연일 강행군을 이어오고 있으나, 복구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복구 작업이 시작된 첫 주 전산시스템 복구율은 10% 중반대로 저조한 상황이다. 전날 오후 기준 전체 장애 시스템 647개 중 101개(15.6%)가 다시 가동됐다.

이들 시스템은 대부분 국정자원 2∼4층에 있는 것들로, 화재 여파로 전원은 꺼졌으나 직접적인 피해와 거리가 있는 시스템들이다.

이와 달리 5층 7-1 전산실과 같은 층에 있는 7·8 전산실의 경우 분진이 많이 유입돼 이를 제거하는 작업이 선행되고 있다. 복구 작업이 더딘 이유 중 하나다.

7-1 전산실 내 전소된 시스템 96개의 경우 정상화까지 최소 한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들 시스템을 같은 전산실 내에 복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보고, 민관 협력형 클라우드가 마련된 국정자원 대구센터로 이전해 서비스를 재개하기로 했다.

전날인 1일 대구센터 이전을 위한 민관협력형 클라우드 업체가 선정돼 장비 입고가 시작됐다. 정보자원 준비에 2주, 시스템 구축에 2주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정상화 작업 속에 복구 자체가 어려운 시스템도 나오고 있다.

화재에 전소된 7-1 전산실에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개인 업무자료를 저장하는 G드라이브가 있었다. G드라이브는 대용량, 저성능 스토리지로 데이터 백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소실된 데이터를 되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리튬이온배터리 살펴보는 경찰
리튬이온배터리 살펴보는 경찰

  • (대전=연합뉴스)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2025.9.29

임정규 행안부 공공서비스 국장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G드라이브는 백업이 없어서 현재로서는 완전히 소실돼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복구된 시스템이 다시 장애에 빠지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전날 정부는 최근에 복구된 공직자통합메일시스템 접속이 불안정해 메일 접속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알렸다.

◇ 화재 원인 수사 ‘속도’…국정자원 관계자 등 4명 입건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경찰 수사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화재와 관련해 4명을 업무상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형사 입건된 이들은 국정자원 관계자 1명과 배터리 이전 공사 현장 책임자 등 2명, 감리업체 관계자 1명이다

경찰은 전날까지 나흘에 걸쳐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관계자 12명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해 이들 4명이 사고 원인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입건했다.

추후 조사 결과에 따라 입건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경찰은 전산실 내외부에서 모두 25개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CCTV에는 불이 나기 전후의 전반적인 영상이 담겨 있으나, 정확히 불이 난 곳을 비추는 화면은 없다고 경찰은 전했다.

아울러 불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배터리 6개는 잔류 전기를 빼는 안정화 작업을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 의뢰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드릴 등 공구도 감식을 위해 국과수에 넘겼다.

경찰은 우선 작업 전에 주요 배터리 전원 차단기가 내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참고인들의 진술이 일치하고 로그기록으로도 확인한 결과 주요 차단기는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며 “다만 관련 차단기가 여러 개 있어 정확한 작업 경위와 화재 원인은 추가 조사와 감식 등을 토대로 수사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사회부/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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