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문학 산책] 2024 적도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작은 히어로들」

<경력>
·한국에서 직장생활 8년
·자카르타로 이주하여 전업 주부 3년차
·인도네시아 해리티지 소사이어티에서 활동

<수상 소감문>
지난 주말 오전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메일이 전해준 소식은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던 게으른 저를 벌떡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발표 예정일이 몇 주 더 남아있다고 생각한 터라 뜻밖의 수상 소식이었습니다.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며 진짜로 제게 일어난 일임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당선됐단 것을 받아들이게 되자 문득 마지막으로 상을 받았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 상을 받았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도 주어지는 것은 정해진 만큼의 월급이었고, 단지 노동의 대가였습니다. 가정을 위해 충실히 노력한다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의무와 책임만이 있었지 상을 받을 일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받았던 상을 잊을 만큼 어른이 되어버린 제게, 제가 들인 시간과 정성으로 당당히 상을 받게 된 이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도전을 덜 두려워하고 아직 젊다고 믿으며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든든한 힘으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상작> 작은 히어로들

오후 1시 30분.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픽업하기 위해 조금 일찍 가서 줄을 서는 편이다. 픽업하는 차량의 줄이 길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늦어도 아이가 오래 기다린다.

우르르 쾅쾅!!
하늘이 쩍 갈라지더니 천둥이 쳤다. 하늘을 보며 또 비가 오겠구나 생각했다. 나갈 준비를 하는데 빗방울이 창을 요란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빗소리가 심상치 않아 베란다 문을 열어젖혔다. 도시 위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집 안으로 물이 샌 적이 있었다. 혹여나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는 않겠지 생각하며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 자동차가 지상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 순간 굵은 빗방울들이 일제히 차에 내리꽂혔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일사불란하게 화살을 쏘아 적을 공격하는 게릴라군 같았다.

자카르타는 하수 처리가 잘되지 않는다. 버려진 쓰레기들로 하수구가 곧 잘 막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내렸다하면 지대가 낮은 곳은 침수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는 심각한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심한 침수 지역은 전기, 수도도 끊긴다. 급류에 휩쓸리거나 물에 빠져 사망하는 인명피해도 발생한다. 비가 더 불어나기 전에 얼른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20여 분쯤 더 지나서야 학교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골목길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빗물은 순식간에 불어나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 위로 빗방울들이 계속해서 떨어지며 사방팔방 물을 튀겼다. 놀라운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길가에 주차된 차의 바퀴가 반쯤 물에 잠겨 있었고, 가로수의 밑동 역시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찰칵. 핸드폰을 꺼내서 이 장면을 한 장 찍었다.

[남편, 비가 너무 많이 와.] (사진 전송)

놀라움 반, 두려움 반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나면 내 일이 아니라 제삼자의 일처럼 느껴져서 무서움이 가라앉곤 했다. 곧이어 차단기가 위치한 학교 입구에 도달했다. 기사는 ‘Gate B’로 간다고 보안관에게 전했다. ‘Gate B’는 닫혔으니 ‘Gate A’로 가라는 말이 돌아왔다. ‘Gate B’를 지나야 ‘Gate A’로 갈 수 있었다. 차단기가 열렸고 차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제야 시야에 제대로 들어온 보안관의 모습은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빗물이 그의 종아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는 장화를 신지도 바지를 걷어 올리지도 못한 채 물 안에 서 있었다. 흠뻑 젖은 발을 떼기 쉽지 않은지 그는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첨벙첨벙 걸어 다녔다. 불어난 빗물에 우왕좌왕하는 차량들은 그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지대가 낮은 ‘Gate B’ 앞은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학교 앞 도로는 이미 사라졌고 작은 강물이 눈앞에 출렁이고 있었다. 비가 화단의 흙을 쉼 없이 긁어내어 온통 진흙탕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출처 모를 나무 판때기와 약간의 쓰레기들이 그 위를 떠다녔다. 덜컥 겁이 났다. 자동차들은 줄을 지어 물을 가로질렀다. 물속에 사는 악어처럼 몸의 아랫부분은 물에 담그고 엉금엉금 지나갔다. 이상하리만큼 모두가 침착해 보였다. 동요하는 자는 나뿐이었다.

기사는 노련하게 부유물 사이를 운전했다. 차가 지나가면서 물을 밀었고 그 힘에 부유물들은 알아서 자리를 비켰다. 차를 타고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굳게 닫힌 ‘Gate B’ 앞에는 혹시 일어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보안관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답장이 왔다. 나 혼자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홍수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곳에 아이를 두고 혼자 탈출하고 싶진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이곳을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시 후, ‘Gate B’ 앞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 도로에 다다랐고, 이어서 ‘Gate A’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지대가 조금 높은 그곳은 아주 위협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내 아이보다 작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무심코 물가로 발을 떼면 그대로 물살에 떠밀려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작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는 내 눈에 다른 장면이 잡혔다. 보안관들이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아이를 번쩍 끌어안아 차 안으로 쏙 밀어 넣어 주고 있었다. 작은 아이들은 그렇게 자연의 무서움을 느낄 틈 없이 아저씨의 품에 안겨 안전하게 부모의 곁으로 착착 들어갔다. 보안관들은 비 맞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아이들을 도와주었다.

학교 앞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 출입문에 차를 바짝 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차를 앞으로 뺀 후에 유턴해서 돌아 나와야 했다. 유턴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앞 차들은 전보다 더 깊이 잠겨 있었다. 빗물은 차체 바닥을 조금 넘는 위치까지 차올라 있었다. 앞 유리창에 쏟아지는 빗방울들로 인해 그 모습은 보였다, 안 보이기를 반복했다. 그 광경을 믿을 수 없어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기사는 망설임 없이 웅덩이를 향해 들어갔다. 곧바로 물의 출렁임이 발밑에서 느껴졌다. 섬뜩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로 내 발아래에서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 출렁임은 묵직했다. 느껴본 적 없는 공포가 몰려왔다. 차가 움직일수록 그 묵직한 물은 더 크게 저항했다. 자칫 잘못하면 차는 중심을 잃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바로 지금일 것 같았다. 얼어버린 내 눈동자와 달리 기사 아저씨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차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의연한 모습은 두려움이 내 마음을 잠식하려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윽고 교문 밖으로 반가운 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기사는 최대한 출입문과 가깝게 차를 바짝 대주었다. 보안관이 우산을 받쳐 주었고 나는 아이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비가 쏴-쏴- 쏟아졌다. 몇 초 사이에 차 안은 물바다가 되었고 오른쪽 좌석이 흠뻑 젖어버렸다. 아이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처음 겪어본 일에 놀란 얼굴이었다. 모든 일이 종료되어 가고 있었다. 학교 골목에서 벗어나 큰 도로로 나오자, 운전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우리는 무사히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직 긴장감이 덜 풀린 나는 얼빠진 얼굴로 기사에게 감사하다고 연거푸 인사를 건넸다. 짧은 인니어 실력 때문에 충분히 마음을 전달할 수 없어 답답했다. 기사의 쑥스러워하는 얼굴에 소박한 미소가 감돌았다.

자카르타에 살면서 여러 번 홍수 소식을 접하긴 했으나 직접 겪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짧았지만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느낀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날은 온종일 비가 내렸다. 뉴스는 집중호우로 인근 고속도로 및 시내 도로가 침수되고, 교통이 마비되었다고 전했다. 점점 비가 잠깐 소나기처럼 왔다 가는 일은 흔치 않아졌다. 갈수록 이상기후가 심해지는 탓에 폭우들이 종종 쏟아졌고 자카르타는 범람하는 빗물로 마비되는 일들이 잦았다. 지난 폭우가 내린 날을 겪으며 내가 낯선 타국에서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나의 자카르타 삶 속 곳곳에 있는 작은 히어로들 덕분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이 글을 통해 익명의 보안관들과 기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심사평>
우수상으로 첫 번째 고아라의 작품<작은 히어로들>은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느끼는 이민자로서의 문화적 차이를 정조준하여 ‘주제의 문학’이라는 수필의 성격을 제대로 관통하고 있어 감동을 격조 있게 보여준다. 한국문화와 인도네시아문화의 차이를 ‘가족애’를 통해서 ‘이타심’이 발생되는 부분을 발견해 보완해 주는 미적 장치가 독자들에게 사유의 세계를 열어준 점이 돋보였다.
심사: 서미숙(글), 김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