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서 나온 환경호르몬…용의자는 냉장고 속 플라스틱 용기”

순천향 구미병원 연구팀 “음식에 프탈레이트 흘러든 듯…장기보관 땐 유리그릇 등 바람직”

플라스틱 속 프탈레이트, 자궁근종 위험 높여…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생활용품 사용 습관으로 바꿔야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꼽히는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많이 쓰이는 가소제(화학첨가제) 중 하나다.

플라스틱이 원료인 장난감, 바닥재, 포장재, 그릇, 세제, 화장품 등에 흔하게 사용된다. 오랜 시간 노출되면 내분비계 교란과 신경독성을 일으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프탈레이트(phthalate)가 냉장고 속 음식을 담아두는 플라스틱 용기를 통해서도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순천향대 구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조성용 교수 연구팀은 국민환경보건조사(KoNEHS)에 참여한 성인 3천333명(남 1천526명, 여 1천807명)의 소변 시료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냉장고 내 식품 보관용 플라스틱 사용이 프탈레이트 노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런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8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Annal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최신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냉장실과 냉동실의 식품 보관에 플라스틱을 사용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전체 연구 참여자의 소변 시료를 통해 26종의 환경유해물질 농도를 분석했다. 냉장고 플라스틱 용기로는 그릇은 물론 지퍼백, 비닐봉지가 모두 포함됐다.

이 결과 냉장고 식품 보관에 플라스틱을 사용한 남성은 다른 재질의 제품을 사용한 남성에 견줘 소변 속 프탈레이트류(DEHP) 대사물질의 농도가 평균 3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비교 조건에서 세부 대사물질별 농도는 MEHHP(모노 2-에틸-5-하이드록시헥실 프탈레이트), MEOHP(모노 2-에틸-5-옥소헥실 프탈레이트), MECPP(모노-2-에틸-5-카르복시펜틸프탈레이트), MnBP(모노-n-부틸 프탈레이트)가 각각 35%, 48%, 32%, 44% 높았다.

DEHP의 소변 대사산물인 MEHHP, MEOHP, MECPP 등은 체내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건강에 다양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MEOHP는 어린이의 지능 지수와 주의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임산부가 MEOHP에 노출되면 임신성 당뇨병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MECPP와 MEOHP는 각각 유방암 위험과 자궁 내 태아의 성장 지연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중국에서는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봉지에 담았던 뜨거운 수프나 국물을 먹으면 플라스틱에 있던 프탈레이트 성분을 섭취하게 돼 소변에서 프탈레이트 대사 산물의 농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연구팀은 냉장고 내 식품이 오랫동안 플라스틱에 노출되면서 프탈레이트가 식품으로 쉽게 이동하고, 이 식품을 통해 인체에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는 냉장고 플라스틱 용기와 프탈레이트 노출의 연관성이 여성에게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남성이 여성보다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섭취하는 경향에 기인하는 것으로 봤다.

프탈레이트의 특성상 친지질성을 가지고 있는데, 플라스틱 내 프탈레이트가 지방함량이 높은 음식으로 이동이 잘 되기 때문에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하는 남성의 특성이 이런 성별 차이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조성용 교수는 “프탈레이트에 대한 인체 노출은 경구 섭취, 피부 흡수, 흡입 등으로 다양하게 이뤄지지만, 경구 섭취가 주요 노출 경로”라며 “이번 연구로 미뤄볼 때 냉장고에 음식을 장시간 보관할 때는 플라스틱 용기보다 유리나 사기그릇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속 프탈레이트, 자궁근종 위험 높여

환경 호르몬 중 하나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하는 데 쓰이는 ‘프탈레이트(phthalate)’가 자궁근종 위험을 높이는 이유가 밝혀졌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의대 산부인과 과장 세르다르 불룬 교수 연구팀은 프탈레이트의 종류 중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디에틸헥실 프탈레이트(DEHP: di-ethylhexyl phthalate)와 자궁근종 사이에 강력한 연관이 있음을 확인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시험관에서 각종 프탈레이트가 체내에서 분해될 때 생성되는 여러 가지 화합물에 자궁 조직을 노출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DEHP는 여성의 호르몬 경로를 활성화해 세포 내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자궁 내막의 근종 생성을 촉진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생활속에서 프탈레이트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증가하고 있다.

주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방암을 비롯해 간, 신장, 심장, 폐 등에 발암성이 확인됐다. 또한 대표적인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정자 수 감소, 정자 내 DNA 손상 등 생식 호르몬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몸의 해독 기능이 부족하여 프탈레이트와 같은 물질에 더욱 취약하다.

전 세계적으로 프탈레이트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이다. 2005년 유럽연합(EU)에서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6종(DEHP, DBP, BBP, DNOP, DIDP, DINP)에 대해 0.1 퍼센트 이상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2007년 장난감 수백만 개에 대한 리콜 사태 이후, 2009년 0.1 퍼센트 이상 프탈레이트를 함유한 어린이 장난감이나 육아용품의 판매를 영구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생활용품 사용 습관으로 바꿔야 

프탈레이트는 물질의 농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인 반감기가 매우 짧은 편이라 신체와 환경 속에서 비교적 빠르게 분해되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탈레이트가 들어 있는 물질을 일정 기간 피하는 것만으로도 체내의 프탈레이트 농도가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친환경 생활용품 사용, 포장 음식 피하기, 향 성분 피하기,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 사용 등 일주일간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이는 개인의 생활습관만으로 화학물질의 농도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생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