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1층 수하물 탁송장.
축구장 절반 면적(3천370㎡) 탁송장에서 중년 남녀 100여명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분주한 손놀림으로 여행용 가방을 정리하느라 북새통을 이뤘다.
종이상자와 비닐이 여기저기 널브러지고, 상자에서 테이프를 뜯어내는 소음이 터미널 내부를 가득 채우며 혼잡한 분위기가 더욱 심해졌다.
일부는 도시락통을 바닥에 늘어놓고 밥을 먹는가 하면, 일부는 기둥에 기대 잠을 청하는 등 피난민촌 같은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 산둥성 스다오와 웨이하이에서 각각 한중 국제여객선을 타고 인천에 도착한 중국인 보따리상들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인천에 올 땐 녹두·잣·참깨 등 주로 농산물을 가져와 판매상에게 넘기고 수익을 챙기고, 중국으로 돌아갈 땐 신발·화장품·밥솥 등 한국 제품을 구매해 중국에 유통한다.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서 재포장 작업하는 보따리상들 (인천=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1층 수하물 탁송장에서 중국인 보따리상들이 재포장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3.9.7
보따리상 중 상당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한국 제품을 업체에 미리 주문하고 인천항 터미널 탁송장으로 배송시킨다.
전체 승객의 30∼40%를 차지하는 이들 보따리상은 입·출항 때마다 짐의 부피를 줄이려고 탁송장에서 재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도 택배 차량이 한국 제품이 담긴 상자를 터미널로 계속 실어 날랐고, 보따리상들은 물건을 건네받은 뒤 내용물과 포장용 상자를 분리해 여행용 가방에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물류업체 관계자는 “보따리상들은 대부분 단체로 활동하면서 조장의 지시에 따라 물품을 운반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며 “조장이 물건을 대량 주문한 뒤 1인당 선내 반입량을 고려해 나눠주는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풍경은 지난달 12일 한중 국제여객선이 3년 7개월 만에 운항을 재개한 뒤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중 여객선은 2020년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운항을 중단했다가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 승객 운송에 나섰다.
2020년 개장 이후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던 인천항 터미널에 보따리상들의 왕래가 잦아진 것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터미널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등 문제도 적지 않다.
보따리상들이 재포장 과정에서 종이상자나 비닐을 이곳저곳에 버리면서 터미널의 쓰레기 발생량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기자가 터미널을 찾았던 날, 주차장 옆에 있는 2.5m 높이 대형 재활용품 보관함은 종이상자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인천항시설관리센터 관계자는 “한중 여객선 운항 재개 후 터미널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2배 정도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항만당국은 앞으로 인천항을 찾는 보따리상 수가 계속해 증가하면서 탁송장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 운항 중인 칭다오·웨이하이·스다오·옌타이 등 4개 항로에 이어 롄윈강·잉커우 등 중국 다른 도시를 잇는 4개 항로도 운항 재개를 앞두고 있다.
항만 관계기관들은 보따리상들의 무분별한 재포장 작업 때문에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순수 관광객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7일 “인천항을 찾는 보따리상이 늘면서 탁송장을 바로 옆 주차장 공간까지 확대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보따리상들이 거래처에서 짐을 정리하고 올 수 있도록 하는 등 최대한 탁송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