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동시유행 겨울이 고비…”코로나 경험 철저 평가, 의료체계 선진화 관건”
-마스크·격리 해제는 분분…엔데믹 전환 논의 ‘시기상조’ 지적도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출구전략을 본격적으로 모색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내년 봄쯤을 엔데믹(풍토병화) 시기로 예상하면서 의료체계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계절독감)가 동시에 유행할 올해 겨울을 중대 고비로 보고 그간의 코로나19 유행 경험을 철저히 평가해 의료체계를 보완하며 엔데믹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18일 방역당국과 전문가 등에 따르면 한국은 코로나19 초기부터 현재까지 방역정책이 엄격한 편인 국가로 꼽힌다. 초기에 개인정보 노출 지적을 감수하면서 확진자 동선 공개, 출입명부 작성 의무 등을 시행했고 입국 전 코로나19 검사 의무가 폐지된 것도 이달 초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외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엔데믹 전환 관련 발언을 내놓으면서 국내도 출구전략을 논의할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정기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은 “이제 일상 전환 논의가 필요한 시기로 전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영향으로 3년 만에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이번 겨울이 엔데믹 전환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겨울을 잘 지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내년 봄쯤이 엔데믹 전환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코로나19와 다른 호흡기 감염병이 동시 유행하는 상황을 아직 겪어보지 않았는데, 이번 겨울에 겪어보고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엔데믹으로 가도 늦지 않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겨울 상황을 본 후에 내년에 엔데믹 논의를 해도 된다”고 밝혔다.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팬데믹의 끝이 보인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가능하겠지만 지금이 종식 시점은 절대 아니다”며 “코로나19와 독감이 같이 유행할 가능성이 큰데 겨울을 지나고 내년 봄쯤에 평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석 단장 역시 독감 동시 유행을 지난 내년 봄을 엔데믹 전환에 적합한 시점으로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으로 시점을 정해놓기보다는 지난 3년여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 맞는 계획을 잘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반적인 의료체계가 개선되지 않은 채로 ‘언제까지 엔데믹 전환을 한다’ 또는 ‘해외 동향을 따라간다’ 식으로 논의가 이뤄지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 병원 다인실 구조, 의료 인력 부족 등을 예시로 지적하며 “코로나19로 국내 의료 체계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확인됐는데 이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신종 감염병이 또 등장했을 때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전체적인 의료 체계 선진화·고도화가 엔데믹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공급 차질, 백신 공급 지연,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국민 찬반 논쟁 등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감염취약시설과 취약계층도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취약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며 “아직도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19가 일상적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와 확진자 자가격리 의무 해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관 동국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와 자가격리 의무는 이미 실효성이 크지 않아 동시에 해제하기에 충분하다”며 “국민 면역도 올라가 있는 만큼 풀어줄 것은 풀어주면서 의료 현장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많은 국민이 코로나19 면역을 획득한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는 유효성은 별로 없는데도 불편함을 주고 있어 해제해도 된다”며 “그러나 자가격리 의무를 해제하면 ‘감염병이 걸려도 돌아다녀도 좋다’는 메시지를 주는 셈이므로, 기본적으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엔데믹 전환과 맞물려 코로나19 일일 현황 집계·발표 시스템을 바꿀 필요도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백순영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확진자 숫자보다는 위중증·사망이 중요한데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 수가 괜한 공포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며 “이제는 확진자 숫자 자체에 연연하지 말아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엔데믹 전환 논의 흐름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국민의 인식이 이미 해이해진 가운데 엔데믹으로 넘어가기엔 불확실성이 아직은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관련 직접적 수치는 좋아지고 있어도 코로나19로 다른 질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등의 2차 피해는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아직 코로나19 유행이 진행 중인데 세계보건기구(WHO)의 희망적인 표현이나 다른 나라 상황을 쫓아갈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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