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4월 13일) 4월 21일, 까르띠니의 날 (Hari Kartini)

<1903년 까르띠니와 남편R.M.A.A. Singgih Djojo Adhiningrat>

(2015년 04월 13일)

오는 4월 21일은 까르띠니 (Kartini)의 날로 그녀는 1964년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에 의해 국민영웅으로 추대되었다. 그녀는 중부자와주 저빠라에서 1879년 4월 21일 태어났으며1904년 9월 17일 사망했다.

까르띠니는 인도네시아의 여성해방과 민족자각 운동의 선구자이다. 이에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국가에 대한 지대한 공을 인정받아 그녀는 인도네시아의 영웅으로 칭송된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교육은 일부 엘리트층의 전유물이었다. 또한 여성들은 단지 초등교육까지만 받을 수 있었으며 그 과정을 마치고 나면 집에서 중매결혼을 통해 시집을 갈 시기만 기다려야 했다.

까르띠니는 자와족 귀족출신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지만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야만 했다. 당시 까르디니는 교육 대신 시집을 가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는데 당시 편지를 주고 받았던 친구 중 한 명은 아벤다논이었다. 까르띠니가 사망한 후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어둠이 끝나고 빛이 온다라는 뜻인Door Duisternis Tot Licht였다.

하지만 이후 까르띠니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여성들의 교육에 힘쓰며 ‘인도네시아 여성교육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여성인권신장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그녀의 투쟁은 ‘만년필의 투쟁’이라 불리기도 한다.

결혼 후 학교를 개교한 까르띠니는 교육을 통해 그의 제자들에게 남녀평등에 대해 설명하며 먼저 여성 스스로 평등한 권리에 대한 자각을 하게 만들며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를 가질 수 있게 애썼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