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사이언스(SK바사)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GBP510)이 국산 백신 최초로 임상 3상에 돌입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임상 시험의 방법으로 비교 임상 방식을 선택하면서다. 지난달 인도네시아에서 임상 2상·3상 계획을 승인받았던 다른 국내 기업은 비교 임상을 선택하지 않았다.
비교 임상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임상 방식이다.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지난 4월 프랑스 발네바가 유일하게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과 비교 임상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백신을 개발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은 임상 3상을 진행할 때 유효성 임상을 진행했다. 유효성 임상은 1만 명 이상의 피시험자를 대상으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시험해 백신의 방어 효과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비교 임상은 백신 접종자 수천명의 면역 반응 지표를 기존에 허가한 백신 접종자의 지표와 비교해 효과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5월 31일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계획서 표준안’을 마련하면서 면역원성 비교 임상을 허용했다. 국내 제약사 입장에선 유효성 임상과 비교 임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K바사의 선택은 비교 임상이었다. 백신 개발 경험이 부족한 국내 제약사가 신속하게 임상 대상을 모집•진행하도록 고심하다 허용한 제도가 비교 임상이었기 때문이다. 김강립 식약처장은 비교 임상 도입 이유로 “(수만명의 시험 대상자가 필요한) 전통적인 임상 방식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셀리드·유바이오로직스·진원생명과학 등이 일제히 비교 임상을 추진하거나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다. SK바사도 마찬가지다. AZ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과 GBP510을 비교한다. GBP510 투여군이 AZ 수준의 면역을 형성하면 후보물질의 예방 효과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3990명에게 GBP510 백신을, 990명에게 AZ를 각각 0.5mL씩 4주 간격으로 2회 투여한다.
하지만 제넥신은 다르다. 지난달 7일 인도네시아에서 임상 2상·3상 계획을 승인받은 제넥신은 유효성 임상 방식을 택했다. 절반에겐 제넥신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GX-19N)을, 나머지 절반에겐 위약을 투여해 백신의 예방 효과를 확인한다. 여기서 최소 60% 이상의 예방 효과를 증명하면 인도네시아 정부에 사용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이 비교 임상을 허용하는 한국 대신 인도네시아까지 건너가 유효성 임상을 진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교 임상 대상 백신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국내에서 비교 임상을 추진하는 기업은 정부 허가를 받은 비교 임상용 백신을 자체 공수해야 한다. 정부가 구입해 국내에 접종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법적으로 임상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AZ·화이자·모더나·얀센 등 백신 개발사와 협상해 별도 백신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이 부족한 현재 상황에서, 일개 바이오 기업이 임상용 백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이에 비해 SK바사는 AZ의 백신을 위탁생산(CMO)하고 있어 비교적 손쉽게 임상용 백신 협상 테이블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넥신은 또 “백신 후보물질과 비교용 백신은 유사한 플랫폼 방식일 때 정부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정부가 지금까지 긴급사용을 허가한 백신이 많지 않아 비교 임상 승인이 사실상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백신 플랫폼이란 백신에서 특정 항원·유전정보를 바꿔 백신을 개발하는 기반 기술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긴급사용을 허가한 AZ·얀센은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 화이자·모더나는메신저리보핵산 백신(mRNA)이다. 제넥신과 동일한 플랫폼(디옥시리보핵산백신)을 활용한 백신은 아직 승인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정미 식약처 임상정책과장은 “물론 동일한 플랫폼끼리 비교할 경우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플랫폼이 다르더라도 중화항체가를 비교하면 면역학적으로 백신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이 선뜻 비교 임상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비교 임상으로 긴급승인을 받을 경우 수출에 제약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비교 임상은 명확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맞지만, 비교 임상은 피실험자 규모가 지나치게 적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도입률은 18.1%에 불과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미 1억 명분의 코로나19 백신 도입을 계약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긴급승인을 받은 백신이 해외에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제넥신은 유효성 임상 진행 배경을 설명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유럽의약품청(EMA) 등이 비교 임상의 면역대리지표(ICP)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비교 임상이 국제적 효과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