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어 사전에서 여자 남자 단어 변화

사진= 인도네시아어 공식 사전 KBBI의 최신 버전에서 perempuan의 사전적 정의를 캡처한 사진 (출처: The Jakarta Post
김채희/ JIS 9
최근 인도네시아어 공식 사전 KBBI(Kamus Besar Bahasa Indonesia Pusat Bahasa, 영어: The Great Dictionary of the Indonesian Language of the Language Center)의 온라인 버전에 등재되어있는 여자를 지칭하는 단어인 ‘perempuan’ 의 관련어가 수정되었다. 이전에는 ‘perempuan’ 을 검색하면 ‘perempuan lacur’, ‘perempuan jalang’, ‘perempuan nakal’, ‘perempuan jahat’ 등 여성을 매춘과 관련시킨 여성혐오적 표현들만이 관련어로 등재되어있었다.
하지만 공식 사전 수정 후 버전에는 여성혐오적 관련어들이 전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perempuan karier(전문직 여성)’, ‘perempuan idaman(이상적인 여성)’, ‘perempuan suci(신성한 여성)’ 와 같은 정상적인 관련어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작은 변화 뒤에는 많은 인도네시아 여성인권 운동가들의 힘든 사투가 있었다.
여자를 지칭하는 인도네시아어 ‘perempuan’은 1988년 인도네시아 공식 사전 KBBI가 처음 발행되었을 때 사전에 등재되었다. 1988년 초판 KBBI 에서 ‘perempuan’의 사전적 정의는 여자를 지칭하는 ‘wanita’의 동의어에 불과했다. 초판 이후에 발행된 버전에서 ‘perempuan’은 ‘질이 있고, 월경을 할 수 있고, 임신 할 수 있고,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사전적 정의되었다. 이후로 여성은 ‘아내’와 ‘암컷 동물’을 지칭하는 의미와 함께 여러 매춘과 관련된 여성혐오적 관련어들이 추가되었다. 인도네시아어 ‘perempuan’의 이러한 사전적 정의는 현재 인도네시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이고 가부장적인지 잘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어 기관인 Badan Bahasa는 ‘KBBI에 등재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관련어들을 바꾸려면 사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 먼저다’라며 여성 인권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많은 여성인권운동가가 분노했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 (University of California-Riverside)의 박사 과정 후보자이자 인도네시아 대학교 (UI) 강사인 Areispine Dymussaga씨는 ‘객관적인 것과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무감각한 것은 다르다’라며 분노를 표명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인 Ika Vantiani 씨는 ‘나는 단순히 성적 대상이나 남편의 소유물로 정의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강한 개혁 의지를 보였다.
반면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인 ‘laki-laki’의 사전적 정의와 관련어를 대조해보면 인도네시아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더욱더 극명해진다. KBBI사전에서 ‘perempuan’이 매춘에 관련된 온갖 여성혐오적 관련어를 가진 것과는 달리 ‘laki-laki’를 검색하면 관련어는 ‘용기와 힘과 같은 남성과 관련된 좋은 특성이 있는’이라는 긍정적인 뜻의 “kelaki-lakian” 한 가지만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변화된 사전이 보여주듯 인도네시아 사전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이 점차 개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한 2020년 글로벌 성별 격차 지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조사 대상 153개국 중 85위를 기록했고, 이는 108위에 등재된 대한민국보다 좋은 성적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2004년 선거부터 시행된 선거 성별 할당제를 통해 많은 여성에게 정치권으로 입문할 기회를 주고 있다. KBBI사전에 등재된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관련어들은 앞으로 더 평등한 인도네시아 사회를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