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은 한인이주 100주년 기념의 달

인도네시아 이주 첫 한인 장윤원 선생

한인100년사 탐방팀은 장윤원 선생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자카르타 뽄독인다의 따나 쿠시르(Tanah Kusir Cemetery) 묘지에 장윤원 선생 가족 묘소가 있다. 묘비에는 ‘장윤원’이라는 한자와 일본식으로 발음한 ‘조 준 엔(CHO JUN EN)’ 이름과 출생지 ‘서울’이 함께 새겨져 있다. 묘지에는 1984년도에 별세한 부인 황항아와 차녀 장방기가 함께 합장되었다. 사진.한인100년사 탐방

인도네시아의 한인 역사가 시작된 것은 3·1운동 자금을 지원한 장윤원(張潤遠·1883∼1947) 선생이 망명 생활을 하다 1920년 9월 20일 자카르타에 도착한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장윤원 선생은 중추원 의관을 지낸 장석찬의 외아들로 일본 동경제국대학 상과를 졸업한 뒤 은행에서 일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은행 돈을 빼돌려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장 선생은 독립자금 지원 사실이 발각되자 만주를 거쳐 베이징으로 도망, 1920년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던 네덜란드 총독부 고위관리의 권유로 망명했다.

장 선생은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 총독부 일본어 담당 수석 고문관으로 일했다. 일본은 1942년 3월 인도네시아를 점령하자마자 장 선생과 장남을 체포해 헌병대로 끌고 가 고문한 뒤 교도소에 가뒀다. 장 선생은 1945년 8월 종전으로 출옥한 뒤 재자바 조선인민회 출범을 뒤에서 돕는 등 조선 동포들을 위해 뛰었으나 고문 후유증 등으로 1947년 11월 6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고국에 두고 온 가족이 있었으나,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여성과 결혼해 2남 3녀를 뒀다. 장남해(장남), 장창포, 장방기, 장순일(차남), 장평화씨 순이다. 막내딸 장평화는 한국총영사관 직원으로 채용돼 1971년 한국을 방문하고, 1974년 한국인 외교관과 결혼해 2016년 숨질 때까지 한국에서 살기도 했다. 남편은 여한종 전 파푸아뉴기니 대사다.

그동안 장윤원 선생의 후손들은 한인사회와 거의 교류가 없었으나, 한인 이주 100년을 앞두고 지난해 대사관이 가족 6명을 초청해 한인 100년사 집필진과 함께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자료정리 연합뉴스>

[한인이주 100주년 특별 메시지]

마루프 아민 인도네시아 부통령
마루프 아민 인도네시아 부통령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장님과 내빈 여러분,
저는 인도네시아 부통령입니다. 오늘 인도네시아 한인이주 100주년을 맞이하여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딘지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가 독립하기전 이미 한인들이 인도네시아에 있었고 그 분들 중에는 인도네시아 독립투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잃고 인도네시아 영웅묘지에 안장되신 분도 있습니다. 이것은 양국 관계가 오랜기간동안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간의 공식적인 관계일뿐 아니라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양국이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고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경제분야에서도 한국은 인도네시아로 점점 많은 투지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한국제품도 많아지고 그 제품들이 인도네시아인들의 마음도 사로잡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엘지 같은 한국 제품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처럼 많은 이익을 초래하는 투자는 지속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한국제품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인도네시아 산업화 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한 기술이전도 기대해 봅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투자와 기술이전으로 인도네시아 생산품들의 품질이 향성되어 해외로 수출이 많이 될수 있기를 그리고 보다 더 많은 생산품들이 한국으로 수출이 되길 희망합니다.

참석자 여러분, 지금 대유행중인 코로나 감염증을 보면 세계 어느 나라도 독자적으로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증은 협력과 협업이 무척 필요합니다.

코로나 감염증의 유행으로 발생된 우리의 어려움을 덜어준 한국 정부와 재인도네시아한인회에 감사드립니다. 그외에도 한-인도네시아 양국간의 의료기기 생산 협업은 양국에 상당한 이익이 된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협력이 더 많아지고 발전되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내빈 여러분, 경제분야외에도 양국간의 사회 문화적 관계도 상당히 강력합니다. 요즘 인도네시아 전역의 젊은이들은 K-POP 가수를 알고있고 한국드라마에 열광합니다. 한국에 대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관심이 한국을 방문하는 인도네시아 관광객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아무쪼록 인도네시아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증가하길 기대합니다.

K-POP문화에 대한 열광이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창의력에 영감을 주고 외국에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알릴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도네시아 교육분야의 한국인의 공헌에 감사드립니다. 자카르타에 유명한 사립대학이 있는데 그 대학 설립자중 한분이 한국인의 후손입니다. 이 대학은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에게 한층 더 수준 높은 교육을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양국의 관계는 공적인 관계뿐 아니라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국민들간의 경제 사회 문화적 관계를 보면 양국의 우호 관계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줍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좋은 관계가 양국에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인도네시아 한인이주 100주년 기념은 양국의 좋은 관계와 협력을 더욱 증진시킬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한인이주 100주년 특별 메시지]

쁘완 조 여사(93세) /장윤원 선생 차남. 장순일 아트마자야 대학 설립자 부인
쁘완 조 여사(93세) /장윤원 선생 차남. 장순일 아트마자야 대학 설립자 부인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장윤원 선생님의 며느리인 쁘완 조입니다.
제 나이는 올해 93세입니다. 인도네시아 장윤원 선생님의 가족을 대표해 이렇게 축하 인사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아버님(장윤원)이 1920년 9월 20일에 인도네시아에 첫 발을 디딘지 100주년이 된 것을 축하해 주셔서 한국 대사관과 전체 한인동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희는 시어버님이신 장윤원 선생님께서 인도네시아로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신의 뜻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지난간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더 나은 삶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좋은 친분 관계가 역사에 기록되기를 소망합니다.
장윤원 선생님의 인도네시아 정착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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