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발세금(BP)…출국납부금(10000원)이 포함돼 있습니다.” 대한항공 해외 항공권에 명시돼 있는 출국납부금 징수 안내문이다. 출국납부금은 여행객들이 해외로 나갈 때 내는 부담금이다. 흔히 출국세로 불린다. 항공권을 사면 요금에 포함돼 자동으로 납부된다. ‘관광산업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고 관광을 통한 외화 수입의 증대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으로 거둬왔다. 관광진흥개발기금법에 징수 목적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해외여행객들이 관광진흥개발을 위해 국가에 내는 돈은 사실상 1인당 1만원이 아니다. 그보다 적다. 1만원의 4.5~5.0%는 항공사가 챙긴다. 출국납부금을 국가 대신 거둬주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다. 출국납부금 위탁수수료로 불린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받아왔다. 그러나 옆 나라 일본에는 이런 수수료가 없다. “항공사가 항공권을 팔 때 세금을 더 받아주기만 하면 되는데 이런 수수료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지난 7월30일 일본 관광청 총무과 조정실에 출국납부금 위탁수수료 제도가 없는 이유를 문의한 결과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항공사들은 그 동안 이 수수료를 해외여행객들로부터 얼마나 받아 왔을까. 공개된 공식 통계는 없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일반인은 물론 언론에도 공개하지 않는다.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18일과 30일에 각각 정보공개청구를 해 봤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업 비밀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에서다.
항공사, 출국세 징수 대행으로 수십억 챙겨
1496억원. 국내 항공사들이 지난 2004년부터 작년까지 15년 동안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수수료 총액이다. 2004년은 항공사들이 항공권을 팔 때 출국납부금까지 받아주고 수수료를 떼기 시작한 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를 거부해, 두 번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출국납부금 수수료 현황과 항공사 수수료율을 토대로 추정치를 구했다. 그 뒤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과 담당관에게 추정치와 계산 방법을 설명한 뒤, 그 수치를 보도해도 무방하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항공사들의 1년 치 수수료 수익 총액은 15년 새 무려 4.5배나 늘었다. 2004년만 해도 40억원에 그쳤으나 작년에는 188억원까지 치솟았다. 매년 약 11% 이상 증가한 셈이다. 그동안 출국자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항공사 수수료율을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낮추지 않고 유지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799만 명에 그치던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18년 2772만 명을 기록했다. 2004년의 3배 이상이다. 항공사의 수수료 수익 총액은 앞으로 15년만 따져도 2820억원 이상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국자 수가 지금보다 늘지 않아도 그렇다. 2004년부터 따지면 30년간 총 4316억원이다.
그렇다면 개별 항공사들은 각각 수수료 수익을 얼마나 올렸을까. 지난 8월13일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실과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작년 한 해에만 수수료 수익을 39억원 이상 거뒀다. 아시아나항공은 작년에만 28억원, 기타 항공사들은 12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대한항공은 매년 29억원에서 39억원까지 수수료 수익을 거둬 5년간의 수수료 수익 총액만 해도 177억원을 넘겼다. 아시아나항공의 수수료 수익 총액도 5년간 137억원을 넘었다.
이는 경기침체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일반 기업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이 74만215곳이다. 이 중 28만5718개 기업은 당기순이익을 0원 이하로 신고했다. 기업 세 곳 중 한 곳은 순이익을 단 한 푼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적자를 냈다는 뜻이다. 일반 기업은 1년 내내 구슬땀을 흘려도 이익을 내기 어려운 현실에, 항공사들은 출국납부금 징수 대행만으로 매년 거액의 수익을 올리는 상황인 것이다.
출국자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8월15일 인천공항에서 만난 박정희씨(61)는 “항공사가 출국납부금 징수 대행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 발권 시스템을 이용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많은 수수료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해외여행객 곽민재씨(24)는 “항공사가 출국납부금을 따로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항공요금 받을 때 그냥 추가로 받아주기만 하면 되는데 왜 수수료까지 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항공사 수수료가 있는지도 몰랐다.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수료율, 의원 지적에도 15년간 요지부동
출국납부금 위탁수수료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식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10월30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허천 의원이 공항공사를 대상으로 이 문제를 따졌다. “승객의 주머니를 털어 항공사를 배 불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항공사의 출국납부금 징수 대행 시작 3년 만의 일이었다.
이재희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항공사가 항공권을 판매하려면 국내외 각 지점망을 유지해야 해 시스템과 인건비에 상당한 비용이 들 것으로 본다”고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항공사는 항공권을 팔 때 출국납부금을 한꺼번에 받아 추가로 비용이 들지 않지 않느냐”는 허 의원의 지적에 곤혹스러워했다. 이후 이 사장은 “원가를 다시 짚어보고 조사하겠다”고 답변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항공사의 출국납부금 위탁징수 수수료율에는 변동이 없었다.
지난해 10월10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수수료 문제가 제기됐다. 조훈현 의원이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현재의 수수료율이 적당한지를 물었다. “해외를 찾는 출국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해 수수료 지급액도 크게 늘어났으니 수수료율 인하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출국 인원만 파악해 인원수만큼의 금액을 납부해 주는 단순한 일에 거액의 수수료를 매년 지급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조 의원의 지적이 계속되자, 도 장관은 “적정 수수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열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수료율은 낮춰지지 않았다.
설득력 없는 수수료율 산정법
취재 과정에서 접한 항공사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수수료율 인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징수 관리와 시스템 유지·보수 등을 위한 인건비, 카드 수수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홍보팀과 아시아나항공 고객만족팀은 ‘기업 기밀’이란 이유로, 제주항공 홍보팀은 ‘모른다’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항공사의 수수료를 적정 수준으로 정하기 위한 당국의 조치는 과연 있었을까. 지난 7월18일 변상봉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과 사무관은 “항공사의 출국납부금 징수 대행 수수료율이 높다는 데 공감한다”면서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여러 부처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수료율 산정을 위한 원가계산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직접 한 적이 없다”며 “수수료율 산정을 위한 원가계산은 인천공항공사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앞서 설명한 대로 2007년 국정감사 당시 “수수료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허천 전 의원의 지적을 받고 사장이 직접 “원가를 따져보겠다”고 답변한 곳이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원가계산을 공항공사가 하는 것으로 안다”는 변 사무관의 말을 전해 주자 “처음 듣는 이야기다. 문체부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국납부금 위탁수수료율 산정 당시 항공사와 관련 부처들이 합의해 수수료를 정하기는 했지만, 따로 원가계산을 해 적정 수수료율을 책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4년 3월 출국납부금 위탁수수료를 포함한 공공기관 위탁 독점수수료 실태를 조사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이 있다. 국회의 예산 및 법안 심사와 의제 설정을 실효성 있게 지원하기 위해 만든 보고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보고서에서 ‘수수료는 사실상의 세금이지만, 세금이나 공공요금 등에 비해 감시통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해 수수료 산정의 합리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담당자나 소관 기관들이 자의적으로 수수료를 정하지 못하도록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박형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출국납부금 위탁수수료의 경우는 준조세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엄격하게 감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외부 위원회를 통해 매년 투명하게 수수료율의 적정성을 평가한 뒤 수수료 수준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19년 동안 납세자 운동을 펼쳐온 한국납세자연맹 역시 “항공사가 출국납부금 징수를 대행하는 데 경비가 발생하면 수수료를 줄 수 있지만, 그 수준은 적정한 선에 그쳐야 한다”며 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또 “수수료의 재원은 출국자들이 내는 귀중한 납부금이니만큼, 수수료 수준을 최소한으로 낮추거나 일본처럼 아예 없앨 수 있는 대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9년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대상’ 수상 기사, 서울여대 김서연, 박서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