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내에 베트남 같은 나라가 하나 더 있고 둘이 더 있으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세안 모두와 가까워질 수 있다.”
임성남 신임 주아세안 대사는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주아세안 한국 대표부 청사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의 대(對)아세안 투자와 교역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와 교역의 성격도 소비재 등의 수출을 넘어서 “인프라와 스마트시티, 디지털, 금융 등 분야로 협력이 다변화되었으면 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께선 상생·사람·평화라는 ‘3P’의 영역에서 골고루 성과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아세안 대표부를 미국 뉴욕의 유엔 대표부 수준으로 격상한 데 대해선 “많은 국가가 아세안과의 관계에 점증하는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일종의 롤 모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사는 아세안 대표부가 동남아시아에서 일종의 지역본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이 아세안의 진정한 친구라고 인식하는 것을 임무를 마치고 떠날 때 확인할 수 있다면 가장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사는 1980년 외무고시 14회로 외교부에 입부해 주중 공사,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영국대사 등을 지냈으며, 작년 9월까지 두 정권에 걸쳐 3년 가까이 외교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17일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신임장을 전달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했다.
— 주아세안 한국 대표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한 뒤 첫 대사가 된 소감과 포부를 말해달라.
▲ 공직에 복귀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의 하나인 신남방정책의 전진기지인 주아세안 대표부를 맡게 돼 큰 영광이다. 한편으론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 크다는 점 실감한다.
문재인 정부가 신남방 외교란 아주 큰 기치를 내세우기 전까지 한국 정부와 국민, 언론 모두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관계만으로 외교적 시각이 제한돼 있고 함몰돼 있었는데, 이번에 아세안 대표부가 격상, 확대되면서 우리 정부, 언론, 지식인이 세상을 보는 눈이 한반도 밖으로 훨씬 넓혀졌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50년 후, 100년 후에 한국 외교사가 대아세안 관계를 중요한 부분으로 다룰 것이라고 기대하며 의미 있는 때, 의미 있는 곳에 와서 거듭 어깨가 무겁다.
대한민국이 아세안의 진정한 친구라고 인식하는 것을 임무를 마치고 떠날 때 확인할 수 있다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동료 대사들에게도 아주 겸손히 다가가기로 마음먹고 있다.
— 대아세안 외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 아세안은 유엔이나 유럽연합(EU)같이 뿌리를 완전히 내리고 자리를 잡은 지역 기구는 아니다. EU는 회원국이 주권을 EU 집행위에 양도해서 사실상의 중앙정부가 있는 셈인데 아세안은 그렇게까지 제도적으로 발전되진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 잠재력과 지정학적 위치가 갖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많은 국가가 아세안과의 관계에 점증하는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아세안 대표부 대사를 차관급으로 올린 것은 굉장히 치고 나가는 외교, 선도적 외교라고 봐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일종의 롤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림 사무총장도 우리 아세안 대표부의 격상, 확대에 대해서 크게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오늘(16일) 주아세안 베트남 대사를 만났는데, 우리의 이런 조치를 아세안에 대해서 진지하게 중요성 부여하는 한국 정부의 조치로 인식하고 평가한다고 이야기했다.
— 신남방정책 선언으로부터 1년 반이 지났는데 일각에선 그전과 차별되는 성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남방정책의 특징은 외교를 전개해나가는 시간의 틀이 그렇게 급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아세안 회원국만 10개이고, (신남방정책 특별위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50개에 달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작은 것이 많이 모여 신남방 외교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통령께 임명장을 받고 다과회에서 우리가 가진 필요와 아세안의 우선순위, 수요 사이에 접점을 만들기 위한 교량 역할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예컨대 아세안의 중심 개념 중 하나가 연계성(connectivity)인데 그런 차원에서 아세안의 인프라, 물류, 디지털 혁신 등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세안 10개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공공기관과도 많은 협의를 하려 한다. 각자 주재국의 상황만 들여다볼 테니 서로 정보와 시각을 공유하고 비교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해나가도록 하겠다.
— 주재국 대사와의 업무영역 충돌 우려는 없는가.
▲ 아세안 대표부는 기업으로 보면 일종의 지역본부 역할을 맡긴 것이다. 우리 외교에선 해보지 않은 시도이고, 그렇다 보니 뒷받침할 제도적 틀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시너지를 내라는 것이 대통령의 지시이고, 그렇게 해서 더 잘해보라는 것이 신남방정책의 취지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만 할 길이라고 본다.
— 동남아시아 관련 업무를 맡은 경력이 많지 않은 것 아닌가.
▲ 최근까지 외교부 차관으로 일하면서 아세안을 아주 빈번히 방문하고 많은 인연을 맺었다.
아세안 사무총장의 경우 ‘림'(林) 씨로 저랑 종씨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압두라흐만 파히르 외교차관과 전략대화 등을 계기로 여러 번 만났고, 레트노 마르수디 장관도 작년 남북정상회담 결과 설명하러 와서 장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하는 태국 외교차관도 서울에서 전략대화를 해서 아주 잘 알고 외교관으로서 서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이다. 필리핀 정무차관도 영국에서 나란히 대사로 일한 적이 있어 든든한 면이 있다.
— 현지 외교가에선 아세안 대표부 격상을 계기로 한국이 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를 대폭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특히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는가.
▲ 우리 투자와 교역을 아세안 내에서 훨씬 다변화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베트남의 1위 투자국이면서 제2위 교역대상국이다. 아세안 내에 베트남 같은 나라가 하나 더 있고, 둘이 더 있으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아세안 모두와 가까워지는 것이니 지역적 의미에서 대아세안 투자나 교역이 다변화될 필요가 있다.
분야 측면에서도 소비재 등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서 인프라, 스마트시티, 디지털, 금융 등 분야로 협력이 다변화되었으면 한다. 대통령께선 우리가 내세웠던 상생·사람·평화라는 ‘3P’의 영역에서 골고루 성과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계신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청하는 방안이 거론되는데 아세안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 한반도 문제, 정세에 대해선 아세안 회원국들이 다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상황에선 김 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이 실현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아세안과의 협의, 둘째는 한반도 정세의 여러 측면을 잘 살펴봐야 하겠는데, 지금 단계에서 뭘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6개월 이상 남았으니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오늘 비공식 석상에서 몇몇 대사들이 그 문제에 관해 관심을 표시하더라. 진짜로 김 위원장이 올 수 있겠느냐고, 그런 관심을 표하는 데서 아세안도 이 문제 주시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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