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덕(인도네시아 대학교 한국학과 객원교수,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한인포스트 문화분야 칼럼리스트>
1980년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가로는 조정래를 들 수 있다. 조정래는 <청산댁>(1972),<유형의 땅>(1981),<불놀이>(1983) 등을 통해서 분단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런데 <태백산맥>(1989)은 다양한 인물의 삶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형상화를 통해 한국전쟁의 기원이 민족 내부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태백산맥>은 최인훈의 <광장>이나 이문열의 <영웅시대>와는 달리 관념적인 진술보다는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통해 분단 모순의 현실이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1980년대 중반 이후의 월북 작가 해금 조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 소설이 발표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발표 기간 중 많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지만, 작가는 그동안 사회과학계에서 이루어진 연구 성과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으로 밝혀보고자 하였다.염상진, 하대치 등의 빨치산, 염상구의 청년단, 김범우, 서민영 등의 중도파 지식인 등의 삶을 통해 이 작품은 당대 현실의 역사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형상화 된 등장인물의 삶은 1948년 남한단독정부 수립과정과 여순 반란사건, 6ㆍ25 한국전쟁의 발발과 휴전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한국현대사를 소설화 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좌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태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발표된 한국 소설에서 공산주의자는 대부분 부정적인 인물로 형상화 되어 왔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염상구, 하대치, 정하섭 등 공산주의자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심지어는 영웅적인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남한의 경찰, 군인, 토벌대, 국회의원 등 우익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 작품의 결말이다. 양심적인 지주의 아들인 김범우는 이 작품의 긍정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족주의자로서 좌우 이데올로기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그가 전쟁에 참여하여 포로가 된 후에는 반공포로로 위장하여 석방된 뒤 북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 남게 된다는 것으로 이 작품은 결말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 등으로 인해 이 작품은 당시 이적표현물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작가 조정래는 분단 소설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이러한 내용의 작품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제까지 부정적으로만 표현되어 온 공산주의자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토지 문제와 결부된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회과학 이론을 소설로 형상화한 <태백산맥>의 ‘낯설게 하기’는 이 점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라도 방언의 익살스러운 구사는 이 작품의 재미를 한층 더해줌으로써 발표 당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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