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의 자금줄이었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파장이 전 세계 금융권과 기업들로 퍼지기 시작했다. 각국 규제 당국도 사태를 주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AP 통신 등에 따르면 SVB 영국지점도 파산 선언을 앞둔 상태로 이미 거래를 중단하고 신규 고객을 받지 않고 있다.
약 180개의 영국 정보기술(IT) 업체는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에게 “(은행이 문을 여는) 월요일에 위기가 시작될 것이므로 당국이 지금 막아줘야 한다”며 개입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예치금 손실은 IT 부문에 심각한 손상을 주고 기업 생태계를 20년 뒤로 되돌릴 수도 있다”며 “많은 기업이 하룻밤 새 강제청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에 있는 교육용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링구미’ 관계자는 회사 현금 85%를 SVB에 예치했다면서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SVB가 캐나다를 포함해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 이스라엘, 스웨덴 등지에도 진출해 현지에서 영업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태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트 장관은 이날 오전 영국 중앙은행 총재와 이번 사태를 논의했으며 재무부 관리들이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는 기업과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고 영국 재무부가 밝혔다.
영국 재무부는 현재 스타트업들에 예금 규모, 현금 손실 추정액 등을 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사태가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말 동안 긴박하게 움직였다.
특수한 사례인 SVB 문제가 15년 전 금융위기처럼 전방위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리스크에 불을 붙여 연쇄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으면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과 이웃한 캐나다는 즉각 공포가 번지는 분위기다.
토론토의 광고 기술 개발 업체인 ‘어큐티 애즈’는 보유 현금의 90%에 달하는 5천500만 달러(727억원)를 SVB에 넣어둔 상황이며, 나머지 은행에 있는 현금은 48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SVB 캐나다 지점에서는 현지 테크 산업에 돈줄을 확대하고자 지난해 대출 규모를 두배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SVB 캐나다 지점이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개소 이후 지난해 대출 규모는 4억3천500만 캐나다달러(4천160억원)로 전년도 2억1천200만 달러에서 껑충 뛰어올랐다.
중국 내 SVB 합작 법인(硅谷銀行)은 독자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고객 달래기에 나섰다.
아시아 기술 리더들도 SVB 파산의 잠재적 파급 효과 평가에 분주한 모습이다.
싱가포르 샹그릴라에서 열린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졸업생 모임에서는 금융가·기업가들이 SVB 파산 여파에 대한 소식을 공유했으며,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스타트업 창업자·투자자 회의에서도 논의 주제는 SVB 파산으로 모아졌다.
류정닝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분석가 등은 한 메모에서 “기술 스타트업들은 연구개발(R&D)과 직원 임금 등에 많은 현금이 필요해 예치금이 매우 중요하다”며 “SVB 사태가 기술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런 예치금이 파산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손실을 보게 되면 일부 기술 기업들은 큰 현금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으며, 파산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SVB 본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금융계뿐만 아니라 농업으로도 파문이 번질 조짐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세계적 와인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는 자칫 1990년대부터 쌓아온 명성이 흔들릴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달러와 연동해 비교적 안정적인 스테이블 화폐로 꼽혔던 USDC는 주말 사이 가격이 역대 최저인 0.85달러를 찍었다가 현재는 1달러 근처로 회복됐다. USDC는 두번째로 큰 스테이블 화폐로, 달러화로 연동돼 기본적으로 1달러에 거래돼야 한다.
- 한국은행 “SVB 위기로 은행폐쇄 확산돼 변동성 커질 수도”
한국정부와 한국은행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은행 폐쇄로 이어져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경제·금융 수장들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 간담회를 열고 SVB 사태의 국내 영향을 점검했다.
이들은 간담회 후 “이번 미국 SVB의 유동성 위기가 은행 폐쇄로 확산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아직은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금융 긴축으로 시장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관계기관은 관련 상황을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부작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c)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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