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미국 바깥에서 발행된 달러 표시 채권이 크게 늘었다. 신흥국 정부와 기업들이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해 외화표시 채권 발행에 나서면서다. 달러 약세 추세에서는 부담이 적지만, 강세 전환시 상환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
22일 블룸버그통신은 “팬데믹에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달러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올 초부터 10월 21일까지 미국 외 발행자들이 찍어낸 달러 표시 채권은 1조2900억달러(약 1400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21% 증가했다. 연간 기록으로 봐도 올해는 이미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
달러 채권에 대한 폭발적 수요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로 비롯됐다. 수요는 정부와 기업을 가리지 않았다. 골드만삭스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짐 오닐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기업과 정부는 필요한 모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완성차업체 닛산은 지난달에 80억달러(약 9조원) 규모로 달러화 채권을 발행했다. 아시아에서 단일 기업이 발행한 규모로는 역대 가장 많은 수준이다.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달러는 정부와 기업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수습에 활용했다. 블룸버그는 달러가 전염병으로 촉발한 경기위축이 금융시스템까지 흔드는 위기로 번지지 않게 막는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이 막대한 유동성을 풀면서, 기준금리를 0%에 가까운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시사한 것도 달러채 발행을 자극했다.
하지만 채권으로 달러를 조달하는 건 또 다른 리스크의 불씨가 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타격이 큰 신흥국들 가운데 달러 조달을 크게 늘린 몇몇 나라는 요주의 대상이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만약 지금의 달러 약세가 반전된다면, 채권 상환에 따르는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신흥국에서 올해 연간 달러화 채권 발행물량은 7500억달러(약 851조원)로 추산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중국본부장을 지냈던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학 교수는 “달러화에 대한 광범위한 의존은 미국 연준의 정책의 변덕에 국제 금융 시스템이 인질잡히는 상황이 됐다”며 “특히 신흥국 경제는 자본흐름과 환율에 채찍질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