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이야기 (33) 프로정신 – 익히지 않은 것을 전한 일은 없는가?

토론토 블루제이스(Blue Jays)로 적(籍)을 옮긴 류현진 선수가 팀의 에이스로서 가을 야구 진출을 이끌고, 또한 동료 투수들의 멘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장한 소식이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진행되는 MLB 야구를 실황으로 보려면 이곳 자카르타에서는 새벽 다섯 시 전후하여 일어나야 한다.

“류현진이 당신 아들이우? 이따 유튜브 하이라이트 보면 되지.”
아내의 핀잔을 받으면서도 기필코 새벽 잠 설치고 실황중계를 보는 까닭은 위기에 닥쳐서도 강한 멘탈로 승부하는 그의 ‘프로’ 호흡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녹화 중계는 박진감(迫眞感)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일로, TV 드라마의 명작으로 꼽히는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마에스트로 강’ 역을 맡아 열연했던 탤런트 김명민의 이야기가 신문에 크게 실린 적이 있었다.
그가 당시 새로이 주역을 맡은 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의 루게릭 환자 역을 연기(演技)하기 위해 식사 조절만으로 체중 20 kg을 감량(減量)했다는 ‘지독한 프로정신’에 대한 기사였다.
‘어째서 운동과 식사 조절을 함께 하여 체중 감량을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그 핵심이 잘 나타나 있었다.
‘루게릭 환자에게는 없어야 할 근육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 것이다.

만난 것은 늦었으나, 내가 한문과 서예를 배우던 연하(年下)의 스승이자 지기(知己)이며, 또한 술 벗으로 현천(玄川)이라는 서예가이자 한학자, 시조 시인이 있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뇌일혈로 쓰러지더니, 뇌수술을 받고서야 깨어나 목숨은 건졌으나 오른 쪽 거동이 불편한 몸이 되었다. 그 역경을 이기고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 왼손 서예를 시작하더니 마침내 회갑전을 열었다. 거기 왼손 글씨로 써 걸었던 뜻 깊은 자작시(自作詩) 두엇 우리 말로 번역하여 소개하면,

‘백발의 인생은 늙어가지만/항심(恒心)은 변치 않는 뜻이 있다오/
시서(詩書)는 평소에 좋아하였고/약주(藥酒)는 한 잔으로 가볍게 든다오’

‘산장(山莊)에 봄날이 좋아/주인이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땅 가득 수풀 꽃이 떨어지는데/금낭(錦囊)에는 스스로 얻은 시(詩) 한 편’

현천이 병후(病後)에 끈기와 인내로 각고(刻苦)하여 터득한 내려놓음[下心], 이것 역시 목숨을 건 불굴의 ‘프로정신’으로 가슴을 울린다.

EPL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최근 한 게임 네 골 해트 트릭을 달성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의 뒤를 이은 것인데, 그 맥은 멀리 히딩크 감독에 잇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뒤 ‘히딩크 리더십’을 삼성경제연구소가 연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 코치의 남다른 ‘프로정신’을 원칙(原則)과 전략(戰略) 양 측면에서 접근하여 하이 파이브(HI-FIVE)라고 재미있게 영어표현의 머리글자를 따서, 요약하였었다.

원칙(HI): 꿋꿋함과 소신 (Hardiness), 공정성 (Impartiality)
전략(FIVE): 기본의 강조(Fundamentals), 혁신추구(Innovation), 가치공유(Value Sharing), 전문기술 활용(Expertise)

태극기를 든 히딩크
태극기를 든 히딩크

특히 선수 선발에 있어서 축구협회의 고질병인 오래된 인맥을 제거하고 참된 공정성(公正性)을 실현하였으며, 우리나라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선수들이 두뇌 활용, 생각하는 축구가 가능토록 지도함으로써 그 수준을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 하였다. 또한 칭찬과 인정, 격려를 통하여 선수들 내부에 잠재한 강점을 찾아내 이를 최대한 신장하였고, 팀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팀워크와 시너지를 이루게 한 것 등은 히딩크 감독이 코칭 리더십의 진수(眞髓)를 드러낸 것이어서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요즘처럼, 공정성 원칙을 실천 과제가 아니라 기획 홍보의 대상으로 만들어 나팔수 입으로만 뇌이면서, 정파의 이익 추구에 목매어 국민 분열을 추구하는 위정자들의 무너진 국가 운영 리더십과 그 피할 수 없는 파국(破局)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심경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히딩크를 수입해 국가 운영을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조(自嘲)하는 마음마저 들게 된다.

연재 칼럼의 글을 읽은 어느 동료 코치 한 분이 고마운 피드백을 해 주었다.
“허 코치의 글 내용은 좋기는 좋은데, 너무 코치의 수동적 역할만을 조명하는 데 치우쳐 있는 것 아닌가요? 코치가 고객에 미치는 능동적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듣고 보니 옳은 말이어서, ‘프로정신’을 빌어 그 답에 대신하려고 코치의 마음 가짐과 역할에 비견(比肩)할 몇 가지 예를 위에 들어보았다.

잘 알려진 증자(曾子)의 글 ‘하루에 자신을 세 번 돌아다 본다[吾日三省吾身]’을 코치의 좌우명으로 인용해 보자.
마지막 구절 ‘전불습호(傳不習乎)’는, 조금 심한 의역(義譯)을 따른다면, ‘익히지 않은 것을 전한 일은 없는가?’라는 점을 뒤돌아 반성한다는 뜻으로도 푼다니, 이것 역시 요즘 표현으로라면 철저한 ‘프로정신’을 나타낸 것이 아닐는지.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프로’다웠던 경영자(經營者), ‘프로’다웠던 코치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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