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사이 한-인도네시아 외교관계에 지각변동에 비유될 만한 대형 외교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는 지난 19일 오전, 한국에서 자카르타로 들어오는 길에 인천공항에서 TV 뉴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서방 지도자들과 정상 외교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보았다.
같은 날 오후, 자카르타 숙소에 도착해 현지 TV를 통해 프라보우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가 G7 회의에 맞대응해 개최한 SPIEF 2025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글로벌 사우스의 단합을 논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프라보우 대통령은 참석 배경에 대해 “G7과 SPIEF 양쪽 모두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SPIEF에서 먼저 초청을 받아 참석한 것이니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 노선을 견지해 온 인도네시아가, 우리나라가 참가한 G7과 대립 관계에 있는 SPIEF에 참가한 사실에 대해 우리 외교 당국은 그 배경을 분석하고 향후 한-인도네시아 관계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라보우 대통령의 이러한 선택에는 최근 국제 정치 상황의 영향과 함께 그의 소탈한 퍼스낼리티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도네시아와 종교·외교적으로 각별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에 의해 1년 반에 걸친 무력 침공을 받아 5만여 명의 인명 피해와 사회 인프라의 대부분이 파괴되는 참상을 겪고, 최근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선제적으로 이란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행위를 이중잣대에 의한 심각한 반인도주의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이후 비동맹을 일관되게 시그니처 외교 기조로 유지해온 인도네시아가 어느 한 진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한-인도네시아 관계의 조화를 염원하는 필자가 우려하는 부분은, 양국 간 외교 관계보다는 경제 분야 협력에 미칠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외교 정책은 경제, 국방, 교육, 문화 정책보다 상위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인도네시아가 중·러에 더 밀착할 경우, 우리와의 통상, 투자, 문화 등 분야, 특히 자원외교, 방산 수출, 대형 국책 건설 부문에서 이미 중국에 비해 열세인 상황이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인도네시아 양국의 외교 노선 차이가 일시적으로나마 명확히 드러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 양국 지도자나 학자들은 외교 노선의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우호 협력 분위기 유지를 위해 이를 애써 외면해 온 측면이 있다. 차이점을 드러내놓고 언급하면 협력 분위기가 깨질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비롯해 최근 목격된 외교적 상황들, 예를 들어 정상외교를 중시하는 프라보우 대통령이 동북아 3국 중 우리나라만 패싱한 점,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정상 간 취임 축하 통화가 다른 아세안 국가들보다 지연된 점 등을 볼 때, 이제는 솔직히 차이점과 그 배경을 상호 이해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입장을 모색하며, 양국이 공통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통상, 투자, 관광, 문화, 교육, 인력 등 분야의 협력 강화에 더 비중을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프라보우 대통령의 파워가 외교는 물론 통상 등 전 영역에 걸쳐 절대적이라는 점, 그의 퍼스낼리티(Personality)가 매우 강하다는 점, 국방장관 시절 우리나라와 불편한 현안들이 있었다는 점 등을 유념해, 우리 외교부는 대(對) 인도네시아 외교 정책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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