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 경쟁 격화 속 아시아 공장 직원들 ‘저임금 고통’

방글라데시 지도

H&M·푸마 등 서방브랜드 납품업체 다수 ‘최저 생활임금’ 미달

H&M을 비롯한 서방 패션업체들의 아시아 지역 납품 공장 직원들이 최저 생활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 수준으로 여전히 허덕이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방글라데시에는 스웨덴 패션업체 H&M 납품 공장 직원 60만명 가까이가 있는데, 지난해 상반기 이들의 평균 월급(초과근무 수당 제외)은 119달러(약 15만5천원)에 불과했다.

연구단체 글로벌생활임금연합에 따르면 이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교외의 최저 생활임금 수준인 194달러(약 25만4천원)를 한참 밑도는 것으로, 근로자들이 저축을 못 할 뿐만 아니라 병원비 등을 위해 돈을 빌려야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독일 패션업체 푸마의 2022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푸마 전체 생산의 8분의 1을 담당하는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지역 공장은 최저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는 미국 브랜드 파타고니아도 2022년 기준 29개 납품 공장 가운데 10곳만 최저 생활임금을 주고 있었다.

서방 패션업체들은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을 지지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들 업체는 일반적으로 공장을 소유하는 대신 협력사로부터 납품받고 있는 만큼 공장 직원들의 임금을 직접 정하지 않으며, 협력사에 특정 임금 수준을 강요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마 측은 임금 문제는 개별 기업 수준을 넘어선 문제인 만큼 업계 차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파타고니아 측은 아직 개선할 여지가 많지만 협력사들의 최저 생활임금 지급 방향에 대해 지지한다고 말했다.

H&M은 현지 공장 직원들의 임금이 너무 낮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공장 직원들의 임금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비판에는 “근로자·노동조합·고용자단체·정부 등의 역할을 저해하는 근시안적 전술”이라고 평가했다.

H&M은 대신 스웨덴 연구그룹을 방글라데시에 파견해 근로자들에게 임금협상을 훈련하게 하는 방식 등을 시도해왔다.

스페인 패션 브랜드 자라의 모기업인 인디텍스 역시 노조 협상을 통해 공장 직원들 스스로 임금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방 패션브랜드들의 납품 공장들이 있는 중국·베트남·방글라데시 등은 노조 활동이 금지·탄압되는 곳들로, 인디텍스에 따르면 아시아 협력업체 공장 가운데 단체교섭 합의를 한 곳은 3%에 불과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의류 디자인·제작·판매 주기를 단축하며 시장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패스트패션 방식이 유지되는 데 저임금이 핵심적이라는 점이다.

방글라데시 등 저임금 국가들에 서방 패션브랜드의 협력업체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평가다.

서방 패션브랜드들로서는 최저가로 유명한 쉬인 등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도 협력업체들에 생산 단가를 낮추도록 압박할 유인이 있다.

공장 직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줄 경우 이는 결국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H&M은 2013년 현지 공장 직원들의 임금 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아직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지난해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H&M이 개입한 현지 공장의 3년 뒤 임금 인상률이 대조군 대비 5% 정도 올라가는 데 그쳤다.

논문 공저자인 토론토대 그레그 디스텔홀스트 교수는 그럼에도 H&M의 개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더 많은 기업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대치를 수립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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