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이리안 바랏 해방의 날 (Hari Pembebasan Irian Barat)

2015년 5월 5일

5월 1일은 이리안 바랏(Irian Barat)해방의 날이다.

이리안 바랏은 파푸아의 옛 지명이며 인도네시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지역이다. 이전의 파푸아는 하나의 행정구역이었지만 지금은 파푸아주와 서부 파푸아주로 나뉘어졌다.

파푸아는 인도네시아가 1948년 네덜란드의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았을 때도 네덜란드의 식민지에 속해있었다. 이에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파푸아의 독립을 위해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네덜란드 정부에 협상을 요청했지만 1954년 4월 14일 네덜란드 정부는 이 협상을 거부한다. 이에 양국간 전쟁이 발발한다.

파푸아독립을 둘러 싼 양국의 전쟁은 1961년과 1962년에 발발했는데 당시 네덜란드 군이 인도네시아 군을 이기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1962년 8월 15일 양국 정부는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앉았으며 정전협상과 함께 파푸아 독립에 대해 논했다.

이후 1962년 9월 21일 양국은  ‘뉴욕 협정’(New York Agreement)을 채택하게 된다. 미국, 네델란드, 인도네시아, 유엔 등이 관여한 이 협정에 의해 네델란드가 물러가고 1969년 국민투표에 의해 서부파푸아는 인도네시아령이 된다.

뉴욕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웨스트 파푸아에 ‘유엔 웨스트 뉴기니아 임시위원회(UN
Temporary Executive Authority in West Papua, UNTEA)’를 설치한다. 네덜란드는 웨스트
파푸아에 대한 통치권을 UNTEA에 이관한다. UNTEA는 제1단계 조치를 이행한 직후
인도네시아에 통치권을 이관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엔대표와 직원의 지원 및 참여 하에
웨스트 파푸아의 자결권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위 협정에 따라, 네덜란드는 1962. 10. 1. UNTEA에 통치권을 이관하였다. 그리고 UNTEA는 1963. 5. 1. 인도네시아에 권력을 이관하였는데, 이 때 1969년에 유엔감시하에 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투표를 ‘Act of Free Choice’라고 불렀으며 1969년 7월 14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되었다.

결과는 파푸아주민들이 파푸아가 인도네시아 영토에 편입되는 것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파푸아 주민들은 파푸아를 서부 이리안 (irian)이라고 불렀다 이리안(Irian)은 (I) kut  (R)epublik Indonesia (A)nti (N)ederland의 줄임말이며 인도네시아공화국과 함께하며 네덜란드를 거부한다란 뜻이었다.